임신은 처음이라
단 하나의 생명이 수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우선 가장 먼저는 나의 생활리듬부터 장악했다. 나는 출생 예정일보다 한 달 전쯤부터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10여 년 동안 일하던 관성을 무너뜨렸다. 선배들의 조언대로(선배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다신 없을 꿀 같은 휴식을 만끽하려고 남은 휴가를 모조리 끌고 와 쓴 뒤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 먼저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뉴스를 훑고 일의 우선순위도 매기고 하나씩 처리해 버리는 루틴이 하루아침에 필요 없어지니 왠지 모를 해방감이 들었다. 일반적인 여름휴가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잠깐 한숨 돌리고 다시 업무에 복귀해야 하는 그런 짜릿함은 아니었다. 사형수가 죽을 날을 받아놓고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며 정리하는 기분에 가까웠다. '그래 나 혼자 사는 삶도 재밌었다. 이젠 더 이상 이런 시간은 없겠지. 안녕' 하며 신혼부부의 평화로운 일상을 마무리했다. 조금의 아쉬움과 섭섭함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까지 한 방울 섞인 미지근한 기대감이 몰려왔다.
아기를 가지면서 있었던 가장 큰 변화는 당연하게도 나의 몸이었다. 처음엔 원래 가지고 있었던 똥배인지 새로 얻은 생명의 자태인지 의심스러운 배였다. 그러다가 5개월이 지나자 아기는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내보였고 막달에는 그야말로 배가 남산만큼 부풀어 올랐다.
처음엔 그 변화가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워졌다. '사람 배가 이렇게 커질 수 있다고?', '사람의 배가 이렇게 늘어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매일같이 들었다. 자동차 기본 옵션처럼 탑재돼 있던 똥배는 점점 부풀어서 종국에는 배꼽의 형채를 남기지 않으면서 부풀어 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계치에 다 달은 것 같았다. 바늘로 톡 하고 찌르면 펑하고 터질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면 내 배를 누군가 쳐서 터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계속됐다.
30년 동안 책이나 다큐에서만 보던 사실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느낀 괴리감이랄까. <인간은 포유류에 속하고 여성이 아이를 가진다.>와 같은 짧은 한 줄이 250일에 걸쳐서 서서히 펼쳐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평소에 내가 인간종 중 하나라고 느끼며 살 일도 없긴 하다. 하지만 그 변화는 소리 없이 차분히 그리고 확실하게 나를 바뀌게 했다.
개월수가 지날수록 커지는 내 배를 보고 주변 여자 동료들은 하나같이 아들이냐고 물었다. 아들배가 더 크다는 옛날 얘기 때문인 듯한데, 나는 그때마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이상하게도 '당신 정말 뚱뚱하네요'와 같이 들렸다. (이건 나중에 든 생각인데, 뚱뚱함에 대한 수치는 건강한 국민을 필요로 하는 정부에서 심어둔 개념이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약간의 세뇌가 아닐까)
임신 초기에도 비슷했다. 나온 배가 살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임산부 배지를 야무지게 달고 다녔다. 가방을 바꿀 때마다 배지를 다는 게 꽤 귀찮기도 했는데 그것보다 나온 배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했다. 30여 년 동안 유지했던 몸무게와 체형의 변화가 적응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 배는 조금만 움직여도 몸을 삐걱대게 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골반이 아팠고 발이 팅팅 부었다. 평소에 신던 신발은 이미 맞지 않았던지 오래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강아지와 함께 아파트를 돌아다녔는데, 산책을 중요하게 여기는 애견인의 자세라기 보단 혈당을 낮춰야 했기 때문이다.
중기쯤 검사했던 것 중 하나인 임신성 당뇨로 판정이 났기 때문이다. 재검에서 식후 한 시간 뒤 혈당수치가 140mg/dl미만이어야 되는데, 정확히 140에 턱걸이하며 임당 꼬리표가 붙었다. 부어버린 발로 삐걱거리며 걸을 때마다 낯선 몸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빙의물 소설처럼 말이다. '이런 하찮은 거리를 걸으면서 힘들어하다니, 이 몸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라며 투덜거리고 싶었다.
낯선 변화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아기가 잘 있다는 게 보여서 좋네 싶다가도 임신이 이렇게 삼단로봇 변신하는 것보다 더 큰 노고가 필요하다는 걸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은 세상에 화가 나기도 했다. 역시 세상은 아름다운 면만을 보여주고 추구하는 게 패시브값이구만. 소극적이지만 어려움을 드러내지 않게 해서 '네가 찾아보지 않은 탓이잖아, 그것도 몰랐어?'라며 뻔뻔한 얼굴을 들이미는 느낌.
하지만 이 모든 걸 견디게 하는 것이 임신이다. 생명을 만들기 위해선 이 정도의 등가교환은 이해가 된달까. 사실 생명을 만들어낸다는 건 정말 믿지 못할 만큼 경이로운 일이니까! 내 배 안에서 나와 다른 영혼이, 생명이 꿈틀댄다는 게 처음엔 너무 생경하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심장소리, 손가락, 발가락, 귀여운 콧구멍.. 아.. 어쩌면 더 많은 걸 얻은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