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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Aug 21. 2024

day15. 링 위에선 `I'지만 당당하게 말한다

미친 몸무게라 복싱 시작합니다:1


복싱일지: 24.08.20. 화


"관장님, 오늘은 살살하고 싶어요."  

" 아! 네, 알겠습니다." 

휴, 마지막 미트 연습을 위해 링 위에 올라가서 관장님께 한 첫마디이다.



정말이지 이러고 싶지 않았다. 링 위에 올라섰는데.
살살하고 싶다는 말은 진짜로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너무 배가 고팠다. 복싱 운동을 하기 전에 간단히라도 뭘 먹긴 해야 한다. 그래야 링 위에서 마지막까지 다 쏟아낼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은 점심 한 끼를 먹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운동하는 동안 "힘들다." "기운 없다." "고프다." 이런 말들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중얼중얼. 옆에 있던 회원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까? 3분 운동이 끝나고 30초 쉬는 타임이 오면 보통은 스트레칭을 하거나 물을 마신다. 그런데 오늘은 진짜 힘들었는지 샌드백 기둥을 잡고 있었다. 몸에 기운이 쫙 빠진 건 아니다. 그냥 허기가 졌다. 허기가 지니 만사 귀찮고 뇌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줄넘기 3분 3세트는 채웠고 기본자세 연습도 했다. 무려 0.5kg 아령 2개를 들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연습인 링 위에서 그만 살살해달라는 말을 해버린 것이다. 예전 같으면 사실 이런 말을 꺼내지 못했을 거다. 꺼냈어도 금세 민망해하고 후회했을 거다. 하지만 젠 툭하고 말해버렸다. 배고픔의 힘이란 내성적 'I'를 누르나 보다. 심지어는 부침개 뒤집듯이 말을 바꿔 버리기도 한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이다. 그래도 말을 안 하고 운동하다가
다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우리 몸은 운동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어느 정도 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최악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복싱 운동을 하고 싶지 않아. 그만둘래. 뭐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 특히 운동 스트레스란 무서우니까. 역시 민망은 하지만 살살해달라고 말하길 잘한 것 같다.



마지막 3세트. 왠지 마음이 불편했을까? 마지막이니까 정말 태워볼래요.라고 말해 버렸다. 그렇담 도와드려야죠. 관장님이 대답했다. 허걱!잘못 말했나 싶다. 덜 흘린 땀을 마지막 3세트에서 다 흘려버렸다. 어찌나 몰아치시던지. 심지어는 훅 변형까지 새롭게 나왔다. 2단 훅이라니. 역시 처음에는 어리바리였다. 도대체 이 싸인은 뭔가요? 관장님. 딱 이런 눈을 하고 멀뚱이 쳐다만 봤다. 괜히 불태운다고 했나 보다. 어쨌든 말은 뱉었으니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다. 으으악! 괴성을 지르면서 펀치를 날렸다. 원-투-어퍼-훅-원-투- 피하고-원. 여기서 끝이 아니다. 원-투-찌르고-피하고-원-투. 난리가 아니다.



내 발이 자기 혼자 마음대로 움직인다. 휘청 휘청. 그런데 내 발과 몸은 휘청거렸지만 마음은 휘청거리지 않았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게 운동이지. 이렇게 땀을 흘려야지 제맛이지.
관장님께 말하길 잘했다. 부침개 뒤집듯 말해도 괜찮다.
성격이 'I'여도 괜찮다. 링 위에서 말 안 하고 '꽁'해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무엇이든 말하고 운동 스트레스를 조금 받는 게 나은 것 같다. 힘든 운동은 스트레스는 받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힘듦이 줄어들 것이다. 그럼 나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길 테니깐. 역시 링 위에선 모든 관장님께 말해야겠다. 아무리 잠자다가 이불킥을 하는 'I'여도 말이다. 오늘 복싱 일지 끝.



배고프고 힘든 오늘. 결국 운동 끝나고 먹었다. ㅎㅎ


(근데.  오늘은 줄넘기만 하려고요.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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