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콩불 양념의 배신, 프렌치토스트로 유턴

그냥 편하게 쓴다 ㅣ새벽 1시의 기록

by 흔적작가


새벽 1시 13분이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새벽 1시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쩌면 어린 왕자와 장미처럼 새벽 1시에 길들여진 것일 수도 있다. 콩불 밀키트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헛된 꿈을 꾸었다. 정성을 들여서 조리순서를 3회독, 아니다 5회독을 하며 머릿속으로 시물레이션까지 했다. 심지어 콩나물과 깻잎은 야채 탈수기로 물기를 탈탈탈 털어버렸다. 아, 소고기의 핏물을 키친타월로 제거하라고 하여. 예쁘게 키친타월을 깔아 꾹꾹 눌러주기까지 했다. 정말 완벽했다. 딸아이의 아침준비를 빨리 끝내고 새벽 1시 전에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진짜 믿었다.



콩나물, 양파, 대파를 볶았다. 소고기를 넣고 볶았다. 소고기를 자르지 않고 넣어 가위와 집게가 등장했지만. 이 정도야 뭐, 스피드 있게 진행할 수 있다. 주부경력이 있는데. 당황하지 않는다. 그럼 그럼. 알맞게 잘린 소고기가 익어갔다. 이제 남은 건. 콩불 양념 딱 하나다. 가위로 싹둑. 이제 매끄럽고 윤기가 나는. 물기 가득한 간장 소스가 주르르륵 나오면 된다. 되는데…. 어라. 뭘까. 이 찐득찐득 천천히 나오는 존재는. 왜 물기 먹은 검은색이 아니지. 빨간색? 왜. 어째서. 가스불을 잠깐 껐다. 조리순서에 소스에 대한 정보는 없다. 포장지 이곳저곳을 찾아봤다. 아, 고추장….. 음. 그렇구나. 아침부터 매운 걸 먹여도 될까. 먹을까. 에잇. 망했다. 콩불 양념의 배신. 뒤통수가 얼얼하다.


배신당한 콩불 앙념. 새벽에 꼬르륵 소리가 난다. ;



냉장고에서 계란 두 개, 소시지 두 개, 청경채 하나를 꺼냈다. 이제 이것들로 무얼 해야 하나. 스크램블? 밥을 볶아? 둘 다 별로다. 냉동실에서 바게트 빵을 꺼냈다. 일단 꺼냈다. 어쩌지. 머리가 사정없이 돌아간다. 이미 콩불에 시간을 많이 뺏겼다. 최소한의 시간으로 끝내야 한다. 일단 계란 두 개를 깨서 오목한 접시에 넣었다. 간을 해야겠지. 설탕 조금, 소금은 적당히. 후추도 살짝. 일단 섞는다. 청경채를 빠르게 씻고 야채 탈수기로 탈탈탈 털었다. 이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대기를 하시라 청경채. 모르겠다. 프렌치토스트를 할까. 일단 바게트빵 두 개를 퐁당 계란물에 빠뜨렸다. 냉동실에 있던 빵이라 흡수가 느리다. 심지어 빵이 두껍다. 시간 단축은 물 건너갔다. 자유엄마가 되긴 쉽지 않구나. 빨간색을 뽐내며 깻잎 데코를 한 콩불 째려보기. 넌 내일 아니지. 오늘 점심에 보자. 완벽하게 먹어주겠어.



프렌치토스트. 맛이라도 있어야 한다. 자유를 뺏겼으니 빵의 촉감이 부드러워야 한다. 빵의 2/3 정도는 계란물이 잘 흡수돼야 한다고 딸이 말했다. 뭐, 촉촉함을 살리는 포인트라고 했던가. 그러면서도 계란물이 빵 가운데에는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야 흐물거리지 않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나. 맛집 차릴 것도 아닌데. 아니다, 이 말은 자체 편집을 해야겠다. 지금 새벽 1시가 다돼 가서 마음에 없는 말이 나온 거다. 그래, 냉동 바게트빵이 녹으면서 노란 계란물을 먹느냐고 시간이 걸리는 거다. 촉촉과 살짝 단단함. 그 사이의 촉감을 위해 기다려야 한다. 음, 어, 아, 대충 기다린 듯하다. 이제 익히는 걸로. 익으면서 볼록하게 올라오는 바게트빵을 보니. 잘 된 것 같다. 간은 뭐, 짜지만 않으면 된다. 싱거우면 역시 케첩.



근데 청경채는 어찌해야 할까 모르겠다. 에잇, 그냥 익어가는 프렌치토스트 옆에 놓고, 소금이나 조금 뿌려봐야겠다. 아무래도 청경채는 남을 듯싶다. 미안하다 청경채. 남으면 내가 먹을게. 접시에 소시지 2개, 프렌치토스트 4개, 볶은 청경채를 넣었다. 나쁘지 않아 보였다. 뒷정리를 끝내고 식탁에 아침밥을 올려놓았다. 맛나게 먹어 딸. 엄마는 이제 자유다. 새벽 1시 13분에 찾은 자유. 기쁘다.


맛있겠다. 나 다이어트 중이다. 이러지마. 제발;


새벽 2시 15분이다. 오, 생각보다 글쓰기도 빨리 끝냈다. 역시 열받아야, 억울해야 빨라지는구나. 진짜 끝이다.



사진출처; 내 폰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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