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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송호연 Sep 05. 2017

말과 선언

보통의 존재 - 이석원

왜 선언은 항상 선언에 그치고 마는가.

왜 말로써 세상에 던져지는 것들은 항상 현실에 의해 조롱당하는 신세가 되고 마는 걸까.


더 이상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내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상대가 나타난다.

이제 담배를 완전히 끊은 것 같다고 말하는 순간,

이제 나는 너에게서 완벽히 자유롭다고 말하는 순간,

깨닫는다.

결코 아직은 그럴 수 없음을.


선언의 허망함은 결심을 토하는 것에서만 비록되지 않는다.

감정을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왜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면 그 순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허망함이 밀려오는 걸까. 왜 그것을 입에 담는 순간,

그토록 복잡한 생각이 들며 나의 말의 진위가 스스로도 의심스러워지는 걸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해, 라는 말을 들은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명의 첫사랑을 가지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 좋아해본 것도 첫사랑이요,

좋아했으되 실제로 사귀어본 것도 첫사랑이요,

초등학교 때 사귄 것은 너무 어렸을 때니까

중학교 때부터 사귄 것이 첫사랑이요,

심지어는 성인이 되어 사귄 첫 상대를 진정한 첫사랑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내게 그 말을 해준 것은 중학교 때의 첫사랑.

태어나서 처음 사귀어본 여자 아이였다.

공중전화부스에서

동전을 수십 개씩 쌓아놓고 나누던 긴긴 통화가

마치 찰나의 순간처럼 흘러가던 그때,

어느 날 전화기를 통해 귓가에 들려온

한마디는 내 온몸을 감전시켜버리고 말았다.


"사랑해."


몰핀을 얼마나 맞으면 그처럼 몽롱한 기분이 들까.

철없을 적 들려왔던 사랑의 말들은 

그토록 놀랍고도 강력한 것이었다.


'보고 싶어' '좋아해' '사랑해'


아무런 의심이나 회의 없이, 정말로 순수하고 영원하게

느껴지는 그 말들을 듣고 믿어 의심치 않던 순간들이 그립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듣는 사랑해, 라는 말은

여전히 애틋하지만,

어쩐지 지금의 그 말 속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

참 희한한 일 아니냐.

사랑한다는데,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다는데,

이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말을 내가 그토록 귀히 여기는 사람에게서

듣고 있는데도 어째서 기뻐 웃지 못하고

슬픔으로 아득한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 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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