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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송호연 Sep 08. 2017

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의 야망과 사랑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를 묶어서 낸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었다.

나는 미술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작은 팬으로써 고흐의 전시회가 열리면 빠지지 않고 참관하러 갔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고흐는 생전에 풍족하지 못했다.

자신의 그림이 전혀 팔리지 않아 자괴감을 느끼며 열등감에 시달렸다.

매번 생활비를 동생에게 빌어서 살아가야 했고, 

모든 사랑은 거절당해서 짝사랑으로 끝났다.


역경은 천재를 드러낸다. - 호라티우스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의 명언처럼, 

극심한 역경이 고흐가 그렇게나 탁월한 작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는 엄청난 생활고 속에서 그림을 미친듯이 그려왔었다. 그리고, 그의 편지 속에서는 동생 테오에게 자기는 적어도 게으르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고흐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고흐는 사촌이자 미망인인 케이에게 연정을 느껴서 구혼했지만, 거절당했다. 그 것도 "절대 안된다"라는 강한 거절의 말을 들었다. 케이에 대한 사랑을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느껴볼 수 있다.




이제 너도 내가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았겠지.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귀가 있다.


계속해서 그녀를 사랑하는 것
마침내 그녀도 나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까지
그녀가 사라질수록 그녀는 더 자주 나타난다


너도 이런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니? 그렇기를 바란다. 나를 믿으렴.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작은 고충'도 가치가 있단다. 물론 절망적인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괴로운 순간도 있고, 그러나 더 나은 어떤 게 있기 마련이다. 나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1. 누구를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하는 상태.

2. 사랑하고 있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상태(지금의 내 경우가 그렇지).

3.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하는 상태.


첫번째보다는 두 번째 단계가 낫겠지. 그러나 세 번째! 바로 이게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 1881년 11월 3일 편지 중




짝사랑을 하고 있는 고흐의 모습, 우리가 적어도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리고는 고흐는 이렇게 현실적인 말을 하기도 한다.


어른들의 마음을 바꾸는 일은 케이가 마음을 돌리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마 내가 1년에 적어도 1,000길더를 버는 사람이 된 후에야 그들의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다시 한 번 너무 신랄하게 이야기하는 걸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어른들은 나에게 전혀 공감하지 않지만, 젊은이들은 내 처지를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1,000 길더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음 요즘 말로 해석해보자면, 대략 이렇게 말하는 걸까? "연봉 1억은 되야 어른들의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고흐는 결국 그 어떤 여자와도 진실하고 깊게 사랑에 빠지지 못한다. 혼자서 어설픈 사랑의 고백을 하며, 사랑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고흐는 길거리에서 버림받은 창녀 '시엔'을 집에 데려와 씻기고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사랑에 빠졌다. 고흐의 이런 행동 때문에 그는 그의 멘토 '모베'로부터 버림받는다.


그의 글에서도 표현했지만, 그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하지만, 그는 이렇게나 보잘것 없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날이 올거라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 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 좋다. 미친듯이 배고파하는 사람, 그리고 배움과 꿈에 목마른 사람이 좋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큰 야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미술을 그렇게 좋아하는 나는 아니지만, 

적어도 고흐에게는 마음이 가고 깊은 공감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Alessandro Fornero, Van Gogh Museum and art small talk


아래의 편지는, 시엔과 함께 지내면서 잠시 병을 앓다가 회복하는 시점에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 같다. 여러 장의 편지 중에서 가장 와닿는 '고흐의 야망'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어서 소개해주고자 한다.




테오에게


늦은 밤이지만 너에게 다시 편지를 쓰고 싶었다. 네가 정말로 필요한데, 너는 여기 없구나. 어떨 때는 우리가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없다. 


오늘, 혼자서 다짐했다. 가벼운 두통이나 그것을 떠오르게 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로 말이다. 많은 시간을 낭비했으니 이제는 다시 작업을 계속 해야 한다. 좋든 싫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야외에 나가 규칙적으로 데생을 할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어, 저건 과거에 본 그림이잖아”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오늘은 아이의 작은 요람을, 약간 특징 있는 색을 넣어서 그렸다. 최근 너에게 보낸 초원 그림과 비슷한 것도 작업중이고.


내 손이 너무 하얘져서 기분이 좋지 않다. 이제는 다시 야외로 나가야지. 두통이 재발할 가능성은 일을 미루고 있다는 사실에 비하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가벼운 병 따위에 밀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예술의 비위를 맞추겠다. 조만간에 좀 더 흡족할 만한 그림을 받아보게 될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정말이지 아파서는 안 된다. 내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너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싶다.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려면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내 목표를 이루는 건 지독하게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내 눈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까.


[슬픔]은 그 작은 시작이다. [메르더보르트 거리], [레이스웨이크의 목초지], [건초창고] 같은 풍경화도 그런 시작에 해당할 것이다. 그 그림 안에는 내 심장에서 바로 튀어나온 무언가가 들어 있다.


슬픔, 빈센트 반 고흐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흔히들 말하는 내 그림의 거친 특성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 거친 특성 때문에 더 절실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자만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 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이 야망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고, 열정이 아니라 평온한 느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따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도 내 안에는 평온함, 순수한 조화, 그리고 음악이 존재한다. 나는 이것을 가장 가난한 초가의 가장 지저분한 구석에서 발견한다. 그러면 마음이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런 분위기에 도달한다.


다른 것은 점점 내 관심 영역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그럴수록 회화적인 것에 더 빨리 눈을 뜨게 된다. 예술은 끈질긴 작업,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한 작업, 지속적인 관찰을 필요로 한다. ‘끈질기다’는 표현은, 일차적으로 쉼 없는 노동을 뜻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에 휩쓸려 자신의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동생아, 나에게 전혀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몇 해 안에, 아니 어쩌면 지금부터라도 네 모든 희생에 걸맞는 작품을 보게 될 것이다.


최근에는 다른 화가들과 이야기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 것에는 꿈쩍도 안 했다.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은 자연의 말이지 화가의 말이 아니거든. 요즘에서야 모베가 6개월 전에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말했다. “나에게 뒤프레에 대해서 말하지 말게. 차라리 도랑의 둑에 대해 말하는 게 낫지.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네. 사물 자체에 대한 느낌, 현실에 대한 느낌은 그림에 대한 느낌보다 훨씬 더 중요하네. 그것이 더 생산적이고 더 많은 영감을 주거든.”


예술에 대해, 그리고 예술을 본질로 삼고 있는 삶 자체에 대해 아주 넓고 활짝 열린 느낌을 갖게 된 지금은 테르스테이흐의 말이 거짓이고 과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회화는 전 시대의 회화가 갖지 못한 특별한 매력이 있다. 가장 고상한 예술 표현 중의 하나는 밀레이와 헤르코머, 프랭크 홀 같은 영국인들의 작품이지. 현대 예술가들은 전 시대 예술가들보다 더 심오한 사상가들이다.


View of Haarlem from the Dunes of Overveen, by Jacob van Ruisdael, 1670,


John Everett Millais - Chill October


예를 들어 밀레의 [쌀쌀한 시월]과 로이스달의 [오버빈의 표백된 땅]을 보면, 표현된 감정이 아주 큰 차이가 있다. 홀의 [아일랜드 이주민들]과 렘브란트의 [성경을 읽고 있는 여자들]을 비교해 보아도 마찬가지다. 렘브란트나 로이스달의 작품은 그때나 지금이나 숭고하지만, 현대 작품에는 더 개인적이고 친밀해 보이는 어떤 것이 있다. 스웨인의 목판화와 옛 독일 거장들의 작품을 비교해 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옛것을 모방하는 유행을 따라가서는 안 되겠지. 밀레도 “스스로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를 바라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고 했다. 이 말은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대양처럼 심오하다. 나는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이제부터는 규칙적으로 작업할 것이고, 어떤 점으로 보나 그래야만 한다는 걸 너에게 알려주고 싶다. 간절히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1882년 7월 21일 


https://www.youtube.com/watch?v=ubTJI_Uph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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