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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PD Feb 02. 2019

31. 일하는 것 보다 더 힘든 것 - 3

우리 사무실은 대략 이런 구조로 되어 있다. 


난 영상제작팀 소속으로 소장님, 책임님과는 다른 공간에서 업무를 한다.
즉, 소장님, 책임님께 말씀드릴 것이 있으면 저 공간을 반드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입사 초반에는 외부 촬영이 많아서 외부로 많이 다녀야 했다.
외부로 많이 다니면 현장으로 출근하고 현장에서 바로 퇴근하는 경우도 많았고, 연장근무를 하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소장님께 보고를 해야 했다. (우리 회사는 출근 퇴근 때마다 카드를 찍는다. 카드를 찍으면 출퇴근 시간 기록이 남기 때문에 반드시 찍어야 한다. 현장에 출근하는 경우 기록이 남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거다. 

소장님께 보고를 해야 하는데 소장님도 외부 일정이 바쁘시면 자리를 비우시는 경우가 많다.
보고를 드리러 갈 때마다 소장님이 자리에 없으면 다시 돌아와야 하고 그 와중에도 내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보고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보고를 다음날로 미룰 때도 있다. 정말 그럴 땐 난감하다.  


한 번은 보고를 다음날 했는데 소장님께서
'어제 일을 왜 이제 보고하냐?'면서 뭐라고 한 적이 있었다.
'소장님이 자리에 안 계셔서 보고를 못 드렸다. 업무가 바빠서 보고를 못 드렸다.'
고 하면 핑계인듯하여 '다음에는 바로 보고하겠다'라고 말씀드렸다.
사실 소장님도 약간 기분파라 소장님의 기분을 보고 보고할 타이밍을 잡는다.


그리고 부득이하게 연차를 써야 하는 때가 있었는데
내 일도 너무 바쁘고 소장님께서 한참 새로운 사업으로 업무가 바빴던 터라 제때 보고를 못했던 때가 있었다.
그래도 연차는 최소 2주 이내에 얘기를 하고 써야 하는 암묵적인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서 연차를 쓰기 열흘 전쯤에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예상했던 대로 '왜 이제야 얘기했냐?'면서 말했다.


그냥 형식적인 보고일 뿐이고 회사의 규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내가 요청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건데
왜 그걸 굳이 직접 보고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그룹웨어나 메일로 보고 하면 서로 편할 건데 말이다.


아직 소장님실의 문턱이 좀 높게 느껴진다.
하지만 욕먹을 각오하고
'어차피 욕을 그때만 먹으면 해결되니까'
라고 합리화하고 그냥 다음부터는 말해야겠다.

일하는 것보다 힘든 게 또 한가지 더 있다.

단지 형식적인 보고 때문에 윗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
윗사람의 기분에 맞춰 보고를 해야 하는 것.
출처 : pixabay no copyrigh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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