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험이든 버릴 것이 없다!
나는 태어나서 일본을 방문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일본을 싫어한다거나, 일본 문화에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영화 등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꽤나 많이 봐왔고, 지금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찾아보고 있다. 단지 나는 여러 가지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일본 방문하는 것을 어려워했을지도, 무서워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에게 일본을 갈 기회가 생겼다. 내가 방문을 원해서가 아닌, 회사 출장으로 3일 정도 짧은 기간 동안 방문을 하게 되었다. 도쿄의 오다이바에 있는 빅사이트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가하기 위해 3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방문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일본어를 단 한 번도 공부해 본 적이 없었으나, 일본 전시회에 참가하기 위해 간단한 일본어조차 찾아보지 않았다. "뭐 그냥 영어면 통하겠지, 안되면 번역기 있으니까 사용하지 뭐..."라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갔었다. 출발 전에는 일도 바빴었고, 단순히 전시회에 참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소통을 할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출발 당일에는 일본어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에 약간 긴장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별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시회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조금 긴장을 하게 되는데, 일본에는 생각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영어보다는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게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업무를 목적으로 참가를 하는 전시회에서 그렇다면, 편의점이나 식당에서는 그보다 더 영어로 소통이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통이 되지 않는 영어로 계속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어렸을 적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일본어를 떠올리며 최대한 이야기해 보기라 했다.
처음에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아 얼버무렸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어로 소통을 하기로 한 것이 정답이었다. 내 생각보다 일본어가 더 잘 생각이 나기 시작했고, 영어로 소통할 때보다 일본어로 소통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일본인들이야 상대방이 서툴러도 일본어가 더욱 알아듣기 쉬웠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는 내가 일본어가 그 정도로 말하는 것이 가능한지 스스로도 많이 당황스럽기도, 놀라기도 했다. 하루는 전시회에서 "저는 한국인이며,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아, 영어로 설명이 가능하십니까?"라고 일본어로 일본인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이게 맞는 건가? 일본어 못한다고 일본어로 설명을 하고 있다고?"라는 재밌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기도 했다.
사실 지금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해서 그다지 부정적으로 보거나 하지 않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일본 애니메이션은 오타구들의 전유물처럼 느끼며,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하면 주변에서 썩 좋게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친구들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자주 봤으며, 이에 더해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일본 음악을 들으며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 이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 부정적인 시선에 조금 주눅이 들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일본 애니메이션 등에 관심을 가지고, 즐기기도 했지만. 정작 일본어를 공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당시 제2외국어를 고를 당시 나는 중국어를 선택했으며,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교양 수업으로 일본어를 공부하지 않았으며,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일본어를 읽거나 쓰지 못한다.
그런 내가 일본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를 보고 그 정도 소통이 가능한 것을 보고, "아, 이 세상엔 진짜 버릴 게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이전 나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던 그 친구들은 지금 나만큼 일본어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같이 들었다. 물론 한국에서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도 많고, 일본어를 공부한 사람도 많아, 일본어를 잘하시는 분이 많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일본어를 엄청 유창하게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일본어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 나만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애니메이션에서 쓰는 표현을 현실에서 잘 쓰지 않기 때문에 애니메이션보다는 드라마나 영화가 더 나을 수 있겠으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적어도 귀가 열리는 느낌이 든다.
결과적으로 나는 어렸을 적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덕에 일본 출장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심지어 식당의 메뉴판 등을 볼 경우를 제외하고, 번역기를 사용하지 않고, 식당이나 편의점에 가서도 무난하게 일본어로 소통을 했다. 이런 것을 보며, 언어는 학문적인 것이 아닌, 현실적인 소통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발전시키는 것은 공부 역시 중요하지만, 영상매체를 통해 귀를 열고, 그 발음이 익숙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재밌고도 중요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