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을 다시 읽다
오늘 스토리랩은 한 권의 책을 통해 우리의 시선과 감각을 성찰하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2003년에 발표한 『타인의 고통(Regarding the Pain of Others)』입니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단순한 비평서를 읽는 자리를 넘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히 소비하는 이미지의 세계를 재검토해야 하는 불편한 성찰의 공간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손택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타인의 고통을 ‘본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윤리적 행위임을 강하게 환기합니다.
현대의 전쟁·재난·난민·기아 문제에 대한 보도는 상상을 넘어설 만큼 압도적입니다. 걸프전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쟁이 실시간 생중계된 사건으로 기록되며, 폭력이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시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중세 로마의 콜로세움에서도 풍요로운 로마 시민들은 검투사들의 죽음과 사자에게 희생되는 기독교인들의 비극을 보며 열광했습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타인의 고통을 시각적 구경거리로 삼아왔고, 그 패턴은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장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않는다면, 보는 행위는 언제든 도덕적 무감각으로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손택이 던지는 물음은 단순합니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 장면, 이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나요?”
이 질문은 곧 『타인의 고통』이 그녀가 1977년에 발표한 에세이집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의 연장선에 놓여 있으면서도, 보다 깊고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새롭게 제시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손택은 폭력적 이미지와 고통받는 사람들의 사진을 여과 없이 소비하는 현대 사회의 시선 구조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그녀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전쟁·폭력·재난과 같은 비극적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시각화하는지를 분석하고, 이러한 시각적 재현이 우리의 도덕적 감수성과 공감 능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해부합니다. 손택의 논의는 단순한 ‘사진 비평’을 넘어,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윤리적 감각을 되묻는 철학적 도전입니다.
이미지 시대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바로 ‘고통의 관객’이라는 구조입니다. 우리는 전쟁과 폭력, 재난의 장면을 화면 너머에서 바라보는 안전한 관찰자가 되고, 이러한 비대칭적 시선은 타인의 고통을 하나의 장면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윤리적 위험을 품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비극적 이미지의 반복적 노출은 감정을 소진시키는 ‘감정적 둔화’를 초래합니다. 처음에는 우리를 멈춰 세우던 장면도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의 자극으로 흡수되고, 연민은 피로로, 공감은 얕은 반응으로 변질됩니다. 손택이 문제 삼는 지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타인의 비극은 점점 더 잘 보이지만, 우리는 점점 더 적게 느끼는 이 모순적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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