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함의 역설
"익숙함이 고마움을 가릴 때,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을 가장 아프게 한다."
어린 시절, 거실에 모인 어머니와 친구분들이 한창 남편 흉을 보며 수다를 떨고 계셨다. 그러다 화살이 우리 집으로 향했다. 다들 밖에서 인품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를 칭찬하며 어머니를 부러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거실의 훈훈한 공기를 단번에 가르는, 차분하지만 얼음장 같은 어머니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니거들이 데리고 살아 봐라. 그때도 그 소리가 나오는지.”
그랬다. 아버지는 현관문만 나서면 ‘젠틀맨’ 그 자체였다. 누구에게나 인자한 미소로 인사하고, 이웃과 하급자들에게 늘 자상하게 다가가는 분이었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서면 아버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셨다. 가족들을 마치 군대 훈련병 다루듯 하는 엄격한 모습은 때로 독재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밖에서 뿌린 다정함의 부채를 집에서 가족들의 수고와 인내로 탕감받으려는 듯한 모습에 어린 마음은 서운함으로 채워지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그것은 전적인 이중성만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무뚝뚝한 성격은 아버지의 다정함을 이끌어 내기에는 너무 차가웠고, 아버지는 그 공백을 엄격함으로 채우며 우리에게 ‘바른 삶’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방식으로 당신의 책임을 다하셨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서의 그 부드러운 미소가 집 안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친밀함의 역설’이라는 서글픔을 던져 준다.
참으로 기묘한 역설이다. 우리는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정중하다. 길을 묻는 낯선 이에게는 미소를 지으며 조금이라도 더 친절을 베풀려 하고, 식당에서 실수를 한 점원에게는 “괜찮아요”라며 매너 있는 태도를 유지한다. 밖에서의 우리는 배려심 깊고 평판 좋은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그 가면을 벗고 가장 편안한 안식처인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곤 한다. 온 힘을 다해 지켰던 친절함과 배려심은 현관문 앞에서 옷에 묻은 먼지처럼 툴툴 털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의 사소한 말 한마디, 연인의 걱정 섞인 질문 한마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만 좀 해”, “네가 뭘 알아” 같은 차가운 말들을 함부로 뱉어 내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만다.
왜 우리는 밖에서는 친절을 사용하면서 집에서는 그 찌꺼기만 버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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