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화에게 배우는 생의 사계
아침 산책을 하다 보니, 어느새 홍매화가 피었습니다.
겨울이 춥지 않고 따뜻한 남방의 새해, 이곳에서 홍매화는 너무 흔하다 보니 그리 귀한 손님은 아닙니다. 하지만 외지에서 온 이들은 이 붉은빛에 매료되어 벌써 봄이 당도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하죠. 사실 겨울은 아직 시작에 불과합니다. 무엇이 그리 급해 남들이 몸을 사리는 계절에 홀로 뜨거운 열정을 과시하는 것일까요.
가만히 바라보면 홍매화만큼 개성이 뚜렷한 존재도 드뭅니다. 생명의 근간인 잎사귀 하나 돋지 않은 앙상한 가지 위에, 무작정 꽃부터 피워내니 말입니다. 눈을 씻고 보아도 초록의 기척조차 없건만, 붉은 꽃송이들을 덩그러니 매달고 있는 그 모습은 자못 당당하기까지 합니다. 싸늘한 계절의 무채색 풍경 속에 점을 찍듯 박힌 붉은빛은, 그래서 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지금은 노년에 접어든 우리네 청춘이 아마도 저러했을 겁니다. 세상이라는 황량한 가지 위에 서서,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오직 뜨거운 가슴 하나로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던 시절이 있었죠. 누구보다 먼저 세상에 존재를 알리고 싶고, 가장 선명한 빛깔로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던 그 열정입니다. 지금 눈앞의 홍매화는 생의 가장 뜨거운 한때를 지나는 청춘의 초상 같아 보입니다. 주변이 온통 침묵할 때 홀로 붉게 타오르는 그 용기, 그것은 세상을 향해 던지는 가장 우렁찬 생의 선언인 셈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운 꽃도 때가 되면 지는 법이고, 화려했던 꽃잎 또한 바람에 흩날리기 마련입니다. 찬란하던 홍매화의 붉은 기운이 잦아들면, 나무는 더 이상 자신을 과시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꽃잎을 떨군 그 자리에 비로소 초록 잎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서두르지 않는 그 걸음으로 가지를 차근차근 채워 가고, 무성해진 그늘 사이에서 나무는 소리 없이 '다음'을 준비합니다.
우리의 삶 또한 꽃이 진 뒤에야 비로소 깊어지는 것이겠지요. 청춘의 화려한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서 우리는 '나'라는 개인을 넘어 삶의 무게를 온전히 지탱하는 법을 배웁니다. 안정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묻고 그것을 일상의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시간. '나'만이 옳다는 아집을 내려놓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어 잎을 넓히며 그늘을 만드는 일. 화려한 자태는 사라졌을지언정, 이제는 묵직한 발걸음으로 생의 내부를 채워가는 소중한 단계입니다.
그러니 이 나무를 보고 어찌 단순히 늙어간다고만 할 수 있겠나요. 꽃의 소임을 다한 뒤, 생의 에너지를 결실로 순환시키는 그 지혜로움은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찬란함을 기꺼이 내려놓은 그 자리에 '책임'이라는 단단한 열매를 올려놓는 것입니다.
우리네 노년 역시 많이 닮아 보입니다. 젊은 날의 미모나 기개는 갈무리되었으나, 그 안에는 긴 세월 초록잎을 틔우며 비바람을 견뎌낸 굳건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이제 그 풍성한 결실로 비로소 자신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생의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나요?
뜨거운 꽃의 시기이든, 무성한 잎의 시기이든, 혹은 묵직한 열매의 시기이든 모두 괜찮습니다. 홍매화처럼 제 때에 제 몫의 삶을 다하고 있다면, 우리는 매 순간 아름답게 저물며 동시에 계절에 어울리는 열정을 다시 불태우고 있는 중이겠죠.
봄은 아직 찬 바람 너머에 있지만, 가지 끝에서 먼저 피어난 홍매화는 우리 마음속에 ‘내일’이라는 이름의 따뜻한 희망을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는 듯합니다.
※ 홍매화 = 바로 매실나무입니다. 그래서 홍매화가 핀 다음 잎이 나오고 거기에 열매가 맺히면 이것이 바로 매실이랍니다. 그리고 이 매실로 매실청과 매실주를 담지요. 또 매화는 홍매화 외에도 백매화, 청매화가 있습니다.
딸 보배단지가 팝콘 같다고 말하는, '백매화'도 예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