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 개발자도 짐 싼다"

AI가 집어삼킨 소프트웨어 제국의 종말

by Itz토퍼
0bf77266-aca3-44a1-818b-b086b1087bad.png by ChatGPT

최근 며칠 사이, 세계 테크 업계와 금융 시장에는 전례 없는 '쓰나미 주의보'가 발령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은 이 파도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들이닥칠 파장이 얼마나 거대할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과연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가 마주한 이 격변 속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


흔들리는 거인들: ‘구독 서비스’라는 성벽이 무너지다


어느 시대나 ‘불패의 신화’는 존재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시대를 지배한 신화는 단연 ‘소프트웨어’였습니다. 과거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잡아먹고 있다"는 선언은 현실이 되었고, 코딩은 현대판 마법으로, 개발자는 그 마법을 부리는 선택받은 사제들로 추앙받았습니다. 하지만 2026년 오늘, 그 견고해 보이던 제국의 성벽에 거대한 균열이 가고 있습니다.


최근 뉴욕 증시의 풍경은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수많은 소프트웨어 업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창작의 동반자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도비(Adobe)가 휘청이고, 기업 관리의 표준이었던 세일즈포스(Salesforce)나 오라클(Oracle)의 위상이 예전만 못합니다. 심지어 전 세계 기업의 코딩과 유지보수를 도맡아 하던 인도의 IT 공룡들(TCS, Infosys 등)조차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유는 간단명료합니다. 그동안 수차례 예상해 왔던 'AI의 역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지금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이미 우리 눈앞까지 와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업 앤스로픽(Anthropic)이 선보인 새로운 AI 에이전트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라고 믿었던 영역을 순식간에 정복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초보 개발자가 며칠 밤을 새워야 했던 작업은 AI의 손에서 단 몇 초 만에 끝납니다. 비싼 구독료를 내고 복잡한 기능을 익혀야 했던 소프트웨어들은,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줘"라는 말 한마디에 결과물을 툭 내놓는 AI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대학생들의 숙제를 돕던 체그(Chegg)는 챗GPT 등장 이후 시가총액의 90% 이상이 증발하며 'AI 시대에 가장 먼저 무너진 제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편리한 도구가 나온 수준이 아닙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뿌리째 뽑히는 대격변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기술적 해자'가 마른자리에 드러난 민낯


시장이 패닉에 빠진 이유는 단순히 AI가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그동안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쌓아온 견고한 '성벽'이 사실은 허술한 모래성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상당수의 기업이 독보적인 기술력보다는 화려한 디자인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승부를 보곤 했습니다. 조호(Zoho)의 창업자 스리다 벰부는 "엔지니어링보다 영업에 돈을 더 많이 쓰던 소프트웨어 산업의 거품이 터지고 있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AI가 코드를 자유자재로 복제하고 생성하는 시대가 되자,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독점적 기능'은 사라졌습니다.


마치 복사기가 처음 보급되었을 때 필사본의 가치가 폭락했던 것처럼, 지금 소프트웨어 시장은 그 가치의 근간이 흔들리는 '기술적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습니다. 이를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제 막 '소프트웨어 무용론'의 시대가 열린 셈입니다.


코딩의 종말인가, 창의의 부활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코딩 공부 절대 하지 마라'는 극단적인 목소리들이 들려오지만,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정확히는 '받아쓰기식 코딩'의 시대가 끝났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과거의 개발자가 벽돌을 한 장씩 쌓아 올리는 숙련된 미장이였다면, 이제는 어떤 건물을 지을지 결정하고 거대한 중장비를 지휘하는 설계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업계에서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 혹은 '에이전틱 엔지니어링(Agentic Engineering)'이라 부릅니다.


AI가 쏟아내는 수만 줄의 코드 중에서 무엇이 시장 가치가 있는지를 가려내는 '안목', 그리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AI에게 명령할 수 있는 '기획력'이 새로운 시대의 권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수백 명의 직원이 필요했던 일을 단 한 명의 창의적인 리더와 AI 군단이 해내는 '1인 기업'의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일자리의 상실이겠지만, 상상력만 있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항해를 준비하며: 데이터 주권의 시대


결국 AI는 소프트웨어를 죽이지 않습니다. 다만 실속 없는 '껍데기'를 걸러낼 뿐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는 "자사만의 고유한 데이터를 AI 모델에 내재화한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외부 AI를 빌려 쓰기만 하는 기업은 주권을 잃고 도태되겠지만, 인간의 삶을 진정으로 이롭게 만드는 본질적인 고민과 데이터를 가진 이들은 더욱 귀한 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도구의 숙련도'를 자랑하던 시대를 지나 '질문의 수준'이 실력이 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쓰나미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창작의 세계에도 조만간 이 거센 물결이 들이닥칠 것입니다.


AI라는 거대한 파도는 이미 우리 현실세계의 한복판으로 밀려왔습니다. 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이 파도를 타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는 항해사가 될 것인가요?


그 답은 이미 우리 손에 쥐어진 이 강력한 도구의 고삐를 어떻게 쥐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본 내용에 대한 더 깊이 있는 통찰을 원하시면, 브런치북 《별 것 아닌 것들의 쓸모》에 연재 중인 "0과 1 사이의 사유 세계" 미니시리즈를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3-폭풍우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나만의 나침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