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자유 시간을 허하노라.”

휴식의 역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완벽한 허락

by Itz토퍼

지인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쉴 때는 주로 뭐 하세요?”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쉴 때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주어지면 우리는 무엇을 할까. 보통은 오랜만에 가족들과 둘러앉아 TV를 보거나, 혼자만의 산책을 즐긴다. 휴가철이라면 비행기 표를 끊어 여행을 가고, 주말이라면 가까운 교외로 나가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사실 거창한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쉰다’고 믿는 그 행위들이 정말 우리를 쉬게 하고 있을까?


“다음 주말에 가족들이랑 가까운 산에라도 갈까요?”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휴식은 다시 ‘계획’이 되고 ‘과제’가 되며, '임무'가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하는 ‘휴식의 역설’이다.


'전투적 휴식'이 되어버린 현대인의 쉼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꿈꾸며 휴가를 기다린다. 복잡한 서류 뭉치와 알람 소리에서 벗어나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겠노라 다짐하며 짐을 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기대하던 휴양지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에 직면한다.


이 역설은 비단 여행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짧은 주말조차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지배한다. 유명 맛집의 줄 서기, 소셜 미디어용 인증샷 찍기, 밀린 영화 몰아보기, 자기 계발 강의 듣기까지. 이쯤 되면 스스로 묻게 된다. “이게 쉬는 거 맞나?”


심리학에서는 '생산성 강박(Productivity Guilt)'이라 부른다. 무언가 유용하거나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이 증상은, 현대인에게 휴식마저 '해내야 할 과제'로 변질시킨다. 몸은 멈춰 있을지언정 마음은 여전히 효율의 궤도 위를 달리는 '전투적 휴식'이 반복되는 것이다.


휴식에 대한 오해: '일하지 않는 날'과 '쉬는 날'


어릴 적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날 숙제의 양이 결정하곤 했다. 숙제 없는 날은 마치 어른이 된 후 ‘일하지 않는 날’과 같은 특별한 자유를 허락받은 것과 같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흔히 업무 스위치를 끄는 행위 자체를 곧 '휴식'이라고 착각한다.


초등학교 5학년 반장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 날 오후, 선생님께서 급한 용무로 마지막 시간을 '자유시간'으로 주셨다. 나는 고민 없이 아이들을 몽땅 집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보냈다고. 나에게 자유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날 오후, 그리고 보너스로 다음 날도 나는 호되게 혼이 났다. 당시의 나는 ‘자유시간’을 ‘내 마음대로 하는 시간’이라 믿었지만, 선생님의 기준은 달랐던 모양이다. 왜 자유를 주었다가 다시 뺏어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억울함은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고개를 든다.


심리학의 '자아 고갈(Ego Depletion)'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의지력과 에너지는 한정된 자원이다. 휴가를 떠나서도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하고 정보를 처리하며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행위는 이 자원을 계속 갉아먹는다.


'진정한 자유'가 거세된 휴식은 결국 생활 리듬을 깨뜨리고, 우리를 휴가 전보다 더 큰 피로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래서 때론 주말이 더 피곤하다.

d30abeac-b498-49f1-bbf6-73946d300ea2.png by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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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를 나만의 색으로 물들이며 ‘나답게’ 걸어가는 글무리 작가 Itz토퍼입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에도 작은 위로와 빛이 스며들길 바라며, 제 속의 글무리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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