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사람들은 최악을 먼저 생각할까
우리는 종종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미리 실망한다.
기쁜 소식이 들려와도 마음 한편에서는 어김없이 "그래도 혹시…", "만일에…"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짧은 한마디는 모든 기대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분명 좋은 가능성이 함께 도착했음에도 우리의 시선은 이상하게 나쁜 가능성부터 찾아낸다. 마치 오랜 훈련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 경계선 하나를 넘지 못한 채,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아내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있다. 병원에서 받은 약이든 직접 구입한 약이든, 언제나 설명서의 '부작용' 항목부터 펼쳐보는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늘 그랬기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 몸에 밴 습관이라고 한다. 결국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약 때문에 병을 키우기도 한다. 고작 1mm의 두려움이 삶 전체를 잠식하는 방식으로.
그런데 이 '부작용'이라는 단어를 많은 사람은 본능처럼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인다. 영어로는 'side effect'다. 본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 그것이 전부다. 나는 이 단어가 주는 매력에 이끌리곤 한다. 어떤 약을 먹었더니 집중력이 올랐다거나, 운동을 시작했더니 뜻밖의 인연이 생긴 것 또한 모두 'side effect'이기 때문이다. '덤으로 얻은 효과'라고 해석해도 무관하다.
하지만 많은 이는 부작용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거의 자동으로 "그래서 뭐가 나빠지는데?"라고 묻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조금 서운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우리의 뇌는 행복하도록 설계된 기관이 아니라 살아남도록 설계된 기관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뇌에게 약간 배신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수만 년 동안 위험을 먼저 알아차린 개체가 더 오래 살아남았고, 그 경향은 지금 우리의 사고방식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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