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만큼 얻을 수 있는 사유의 세계는 과연 존재하는가?
「검색창 앞의 여자」
—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다 안다고? 웃기지 마, 내 인생은 내가 골라!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6시 42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뜨인다.
이건 노화일까, 아니면 프로 직장인의 본능일까?
마흔다섯, 마케팅팀 차장 이선미. 누군가는 나를 '차장님'이라 부르고, 아이들은 '엄마'라 부르며, 부모님은 '우리 딸'이라 부른다. 세상이 나에게 입혀준 이 수많은 외투 속에서 나는 오늘도 씩씩하게, 때로는 숨 가쁘게 살아남는 중이다.
눈뜨자마자 스마트폰을 낚아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딱 3초. 이건 거의 반사신경이다. 날씨 앱은 미세먼지를 경고하고, 단톡방은 벌써부터 일 얘기로 불이 난다. 유튜브와 포털은 내가 어제 뭘 검색했는지 귀신같이 알아채고 '맞춤형 식단'을 차려낸다.
"언니, 피곤하지? 이 기사 좀 봐봐."라며 들이미는 알고리즘의 친절함이라니. 하지만 가만있자, 침대에서 몸도 일으키기 전에 내 소중한 뇌 용량 절반이 이미 털려버린 기분이다.
서른 살, 처음 스마트폰을 쥐었을 땐 세상이 내 손안에 들어온 줄 알았다. 길치인 나도 지도 한 장이면 뉴욕 한복판도 누빌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 문득 의구심이 든다. 내가 세상을 보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남이 골라준 '베스트 컷'만 구경하고 있는 건가? 내 취향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설계된 트렌드 안에 갇힌 건 아닐까?
점심시간, 식당 고르는 솜씨는 또 어떤가. 별점 4.5 이상, 리뷰 200개, 웨이팅 제로! 이 정도는 골라줘야 '스마트한 40대'지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실패 없는 선택'만 이어지는 일상 끝엔 묘하게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실패가 없으니 놀라움도 없고, 놀라움이 없으니 내 심장도 무덤덤해지는 기분. 나, 너무 매끈하게만 살려고 애쓰는 거 아냐? 그런데 알고 보면, 나만 잘난 것 절대 아니다. 모두 다 이 정도는 하고 산다.
지난 주말, 중1 딸 지은이가 날카로운 훅을 날렸다.
"엄마, 알고리즘이 맨날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여주면, 난 평생 딴 건 모르는 거 아냐?"
와, 팩트 폭행. 편리하다는 말로 되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지은이 말이 맞다. 우린 스스로 만든 취향의 벽 안에 갇혀버린 셈이다. 아빠는 옛날에 신문을 두 개씩 보셨다. 시선이 섞여야 진짜 세상이 보인다는 걸, 그 시절 아날로그 아빠는 이미 알고 계셨던 거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AI 툴을 쓰면 보고서가 뚝딱 나온다. "이 차장, 생산성 죽이는데?"라는 부장의 칭찬이 돌아오지만, 마음 한구석은 시큰둥하다. 이건 내가 만든 건가, 아니면 잘 정돈된 데이터를 통과시킨 건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동료도 나도 '숫자'로 환산되는 세상. 연간 KPI 시트 위에서 나는 그저 하나의 데이터 포인트일 뿐이다. 나는 정말 효율적인 기계가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내 색깔이 확실한 '사람'이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어느 수요일 저녁, 나는 발칙한 일탈을 감행했다.
조금 늦은 퇴근길에 과감히 지도 앱을 껐다. 그리고 주린 배를 안고 발길 닿는 대로 이름 모를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별점도 없고 리뷰도 없는, 낡은 순대국밥집을 만났다. 김 서린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주황색 불빛이 왠지 모르게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리뷰 확인도 안 하고 무작정 들어간 그곳에서 나는 오랜만에 스마트폰을 가방 깊숙이 처박았다. 국물은 끝내줬고, 무심하게 밥을 먹는 아재들의 풍경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사진도 안 찍었고 인스타그램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 저녁은 온전히 나만의 비밀, 나만의 '리얼'이 되었다. 오랜만에 무언가를 '제대로 쟁취했다'는 짜릿함이 전율처럼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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