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AI 시대, 직원 경험의 두 얼굴

by 테오
article_02_employee_experience.png


우리 회사는 참 좋은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
일은 재밌는데, 회사가 나를 성장시켜줄 것 같지는 않아.

단순한 만족도를 넘어, 직원이 회사와 관계를 맺는 총체적인 여정. 이를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이라 부릅니다. 생성형 AI가 업무 현장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이 경험에 완전히 새로운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AI가 가져온 직원 경험의 역설


생성형 AI는 분명 우리에게 강력한 무기를 쥐여주었습니다. PwC의 2025년 글로벌 인력 설문조사에 따르면, 매일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근로자들은 그렇지 않은 동료들보다 더 높은 생산성, 직업 안정성, 그리고 급여를 보고했습니다. [1] AI를 통해 반복적인 업무에서 해방되고,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인정을 받는 긍정적인 경험입니다.


하지만 동전의 이면도 존재합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 실린 2025년 연구에서, 3,500명 이상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생성형 AI와 협업한 그룹은 다음 과제에 대한 내재적 동기가 평균 11% 감소하고, 지루함은 20%나 증가했습니다. [2]


AI가 인지적으로 가장 도전적이고 성취감을 주던 부분을 대신 처리해주면서, 일 자체의 즐거움과 의미를 앗아가는 '생산성의 역설'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처럼 AI는 직원 경험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리우고 있습니다. 조직심리학의 4가지 차원을 통해 이 현상을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AI 시대, 직원 경험의 4가지 차원


제가 참여한 직원 경험 연구에 따르면, 직원 경험은 크게 <업무>, <관계>, <제도>, <문화>라는 네 가지 차원으로 구성됩니다. [3] 생성형 AI는 이 네 가지 차원 모두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습니다.


【업무 차원】생산성은 올랐는데, 왜 허전할까

AI는 보고서 초안 작성, 데이터 분석, 이메일 작성 등 수많은 업무를 자동화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내가 이 일을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잃을 수 있습니다.


심리학의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사람이 일에 몰입하려면 세 가지 심리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4] '내가 이 일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자각하는 유능감(Competence), '업무의 주요 결정을 나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자율성(Autonomy), 그리고 '주위 사람과 의미있게 연결되어 있다'는 관계성(Relatedness)입니다.


AI가 만들어준 결과물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역할에 머무르다 보면, 이 중 유능감과 자율성에 조용히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성취감 대신 지루함이 찾아오는 이유입니다.


【관계 차원】 효율적이지만, 외로운 소통

AI 챗봇이 간단한 문의에 응대하고, AI가 회의록을 요약해주는 덕분에 소통의 효율은 분명 높아졌습니다.하지만 이는 동료와 스몰토크를 나누고, 함께 머리를 맞대며 유대감을 쌓아갈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기결정이론이 말하는 세 번째 욕구, 관계성이 채워지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기술이 매개하는 소통이 늘어날수록, 의식적으로 인간적인 연결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해집니다.


【제도 차원】 공정한 평가인가, 새로운 불안인가

AI는 성과 평가나 채용 과정에서 인간의 편견을 줄이고 공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AI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라는 새로운 형태의 불안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회사가 나를 공정하게 대우하고 있다는 신뢰는 제도 차원의 핵심인데, AI라는 블랙박스가 개입하면서 이 신뢰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문화 차원】 혁신을 외치지만, 실패는 용납하지 않는 조직

많은 기업들이 'AI 우선(AI-First)' 문화를 외치며 전사적인 AI 도입을 독려합니다. 하지만 충분한 가이드라인이나 교육 없이 AI 사용을 압박하는 문화는 직원들을 '워크슬롭(Workslop)', 즉 AI가 생성한 저품질 결과물을 양산하도록 내몰 수 있습니다. [5]


AI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AI 혁신 문화는 구호에 그칠 뿐입니다.




당신의 회사는 어떤 프로필에 가까워지고 있나요?


이 4가지 차원의 높고 낮음에 따라 직원 경험은 5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3] AI 도입이 가속화되면서, 우리 조직은 어떤 유형으로 변모하고 있을까요?


Lee et al.(2025)의 연구에서 밝혀진 직원 경험 프로필을 저자가 AI 시대에 맞게 수정


AI는 '균형 잡힌 경험'을 제공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우리를 '관계 결핍'이나 '단절된 경험'으로 밀어 넣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설계하고 활용하여 네 가지 차원의 긍정적 경험을 조화롭게 증진시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AI와 함께 일하며 어떤 경험을 하고 있나요? 생산성의 향상이라는 ‘빛’과 동기 저하라는 ‘그림자’ 중 어느 쪽을 더 크게 느끼고 있나요? 당신의 조직은 이 두 얼굴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요?


다음 글에서는 조금 더 가벼운 주제로, 하지만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 인간 고유의 역량, ‘유머’의 힘에 대해 데이터와 심리학으로 풀어보겠습니다.



References

[1] PwC. (2025, November 12). Global Workforce Hopes and Fears Survey 2025.

[2] Liu, Y., Wu, S., Ruan, M., Chen, S., & Xie, X.-Y. (2025, May 13). Research: Gen AI Makes People More Productive—and Less Motivated. Harvard Business Review.

[3] Lee, J., Lee, J., Jun, K., & Kim, K. (2025). Exploring a multidimensional construct of employee experience and outcomes. Personnel Review.

[4] Ryan, R. M., & Deci, E. L. (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American Psychologist, 55(1), 68–78.

[5] Aykens, P., Lowmaster, K., McRae, E. R., & Shepp, J. (2026, February 2). 9 Trends Shaping Work in 2026 and Beyond. Harvard Business Review.


이전 02화01. 왜 다시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