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자폐래요 31

(26.01.18)

by 우리 아빠



- 어제 점심쯤 우리가 평소 좋아하던 내복을 입고 싶어 했다.

아내는 그 내복을 가져다주었고,


"베베가 입고 싶어."


본인이 옷을 입고 싶다는 고집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서투른 손놀림 끝에 만들어져 버린

빨간 아기 내복 오프숄더 패션.


본인 뜻대로 옷이 입혀지지 않아 짜증이 난 우리.

엄마 아빠가 도와주겠다며 조금이라도 행동을 하면

"베베가 입고 싶어."

또다시 자지러지는 아기.


본인이 입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서 짜증이 나고,

본인이 꼭 스스로 하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해주겠다고 하니 더 화가 나는.


돌고 도는 짜증의 굴레가

30분간 이어졌다.


"오빠, 이 정도로 우리가 고집 부리는 건 처음이야."


다행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 할 텐데.


눈물을 끄윽끄윽 삼키며

아기의 점심으로 준비한 김밥을 먹고서야

비로소 진정한 우리 아기.




- "점핑점핑 실내 놀이터 가고 싶어."


방방이가 많은 키즈카페를 기억하고

우리는 그곳에 가고 싶어 했다.


아내를 최대한 쉬게 하고자

온 힘을 다해 우리와 놀아주었는데,


이제는 혼자서도 척척 올라가는 미끄럼틀.

(꽤 경사가 높았다.)


무서워서 혼자서는 타지도 못했던 튜브 썰매.

(이제는 본인이 "출발"을 힘차게 외치며 탄다.)


알게 모르게 수준(?)이 높아진 소꿉놀이.


"커피가 나왔습니다!"

"딸기 아이스크림, 수박 아이스크림이야."

"아기도 와플 먹어.

(아기 모양 인형에게 와플을 먹여 주며)


장난감 칼로 무를 썰고

냄비를 레인지에 올려 보글보글 흉내도 낸다.


심지어 집에 돌아갈때도

한결 온화해진 아기.


"우리야, 차까지 무사히 타면 젤리 하나 줄게."


물론 강화물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젤리 하나로 큰 찡얼거림 없이

평화롭게 차에 올라타 주는 아기가

그렇게 기특할 수 없었다.




- 요즘 교회를 가기 전 항상 걱정되는 것은

다른 친구들의 간식이 보이자마자

거침없이 달려드는 우리의 식탐이었다.


막으려 최선을 다해보지만

우리 또래의 아기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유아부에

온통 다양한 간식들이 눈에 띄는 건 당연한 일이고

매번 "우리야, 안 돼"라며 혼을 내기에도

"어휴 괜찮아요. 아기인데^^"

호의적인 다른 부모님들 앞에서 민망할 때가 많다.


그런 오늘 아침 갑자기 우리가 말했다.


"다른 친구들 간식을 뺏어 먹으면 나빠!"


교회 가기 직전 우리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에

흠칫 감격스러웠다.


그래도 엄마 아빠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우리 아기 성장하고 있는 거구나.


그 영향인지 오늘은 조금은 덜(?) 친구들의 간식에 욕심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 한 번 놀라게 하는 우리의 말.


"소리를 지르면 나빠."


어제 내복사건 때

엄마 아빠가 열심히 우리에게 해 준 말이었다.




- 주말은 여전히 피곤하지만 행복하다.


매번 우리의 예쁨을 느끼고

귀여움을 한 움큼 적신 시간들에

삶이 한층 깊어짐을 느낀다.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 순간들.


사실 정말 모르겠다.

난 우리 아기가 자라나고 있는 것 같은데


자폐 스펙트럼.

발달 장애.


잘 모르겠다 정말로.


아직도 달달 외우는 베베 책

우리의 뚜렷한 지연 반향어를 빼고는

진짜로 모르겠다.

(자기 전에 유독 심해진다.)


아닌가.

어쩌면 이게 가장 명확한 증상이자 증거이려나.


'지연반향어'

빼박 캔트

반박 불가

뭐 이런 걸까.


뭐 좀 그러면 어떤가 싶다.


우리 딸의 성장을

더 오래 느낄 수 있다니.


자폐라는 넓은 스펙트럼에서 찾아오는

아기가 느끼는 고통의 순간들만 보이지 않는다면.


정말로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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