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지 않은 삶
어느덧 직장생활도 20년 차에 접어들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온몸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나의 정신, 육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제는 지쳤다고 아우성친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재미있게 했던 일이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나는 물욕이 많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코로나 팬더믹을 겪으면서 나는 재정립되었고 '자산'에 대한 가치가 내 깊숙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포함한 모든 자산은 나에게 안정 그 자체이자 삶의 원동력이다. 매월 입금되는 월급이 투자를 위한 씨앗이 되고, 그러다 보니 이 쳇바퀴에서 스스로 내려온다는 것은 무직이 되어 사회에서 잉여인간이 된다는 불안보다는 더 이상 심을 수 있는 씨앗이 사라진다는 공포와 엄청난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이내 퇴사는 곧 가슴을 칠 후회로 기록될 것이라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퇴사하고 쉬고 싶다, 아니다 무조건 필연적으로 후회할 것이다, 천사와 악마도 아닌 아웅이 다웅이가 매일같이 머리와 마음속을 어지럽힌다.
책을 읽다 보면 와, 이거 정답인데! 라거나 와, 이거 지금의 나 그 자체인데!라는 느낌이 강하게 꽂힐 때가 있다. 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에서 <우연한 생>이라는 책에서 평론가 엔드로 H. 밀러가 쓴 글을 소개하고 싶다. 꼭 나에게 하는 이야기 같아서, 어쩌면 나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평론가 엔드루 H. 밀러는 <우연한 생>에서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의 말을 인용한다. "누구나 수천 개의 삶을 살 수 있는 조건들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결국에는 그중 단 한 개의 삶만 살게 된다. " 그런데도 우리는 '그때 만약 그 길로 갔더라면/가지 않았더라면'으로 시작하는 상상을 통해 자주 후회에 도달한다. 진화 심리학 쪽에서는 인간이 이런 후회를 자꾸 하도록 진화한 이유가 과거의 실수를 반성함으로써 미래에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였을 것이고, 그런 개체가 더 잘 살아남았을 거라고 추측한다.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나는 30대 중반까지는 후회가 뭐야? 하며 살았던 인간이었다. 그런데 40대가 되면서 체력도 지력도 조금씩 기능이 떨어짐을 느낄 때, 그리고 직장인으로서의 내 커리어의 끝이 가까워짐을 느꼈을 때 한탄이 섞인 후회가 들었다. 아!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 없구나, 공부 열심히 해서 전문직 될걸. 공부를 적당히 애매하게 했던 이들은 한 번씩은 다 해봤을 후회인 것 같다.
내가 의사나 변호사가 됐더라면, 상상해 보았다. (물론 다양한 전문직이 있지만 전문직을 꿈꾸지 않았던 나에게 대표 전문직은 의사나 변호사다.) 어디까지나 내가 의사, 변호사의 세상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외부인으로서 바라보는 상상이다.
나는 동네 의원의 페이닥터다. 매일매일 아프다고 하는 환자들의 비슷한 증상과 치료가 반복되는 일상을 반복한다. 가끔 환자는 나에게 제대로 된 진단을 한 게 맞냐며, 돈 벌려고 과잉진료를 하는 게 아니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매월 일반 직장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금액이 나의 통장에 꽂힌다. 가끔은 페이닥터를 벗어나 내 병원을 갖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내 병원을 운영할 경영자적 기질이 나에게 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내가 쉬면 수입이 없어지는데 그럼 여름휴가 한번 가기가 힘들 것 같아 망설여진다.
나는 유명한 로펌의 변호사다. 경제사범을 주로 담당하는데 이 사람들 뭐가 진실인지 모르겠다. 정말 절세를 한 건지 탈세를 한 건지, 비자금을 조성한 건지 공금을 횡령한 건지, 그런데 진실이 중요하진 않다. 어디까지나 변호사는 클라이언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대변해야 한다. 가끔 프로보노 사건으로 감방 수감자를 담당한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지 없는지 흉악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변호할 때에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하지만 매월 충분한 월급으로 보상이 주어진다. 나의 로펌을 설립하고 싶다. 그럼 어쩌면 내가 수임하고 싶은 사건만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럼 양심의 가책도, 그리고 의심도 없이 정의를 위해 싸워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직원 월급은? 사무실 월세는? 무엇보다 돈이 되는 사건을 맡아야 하는데 그럼 영업도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결국 다시 로펌 소속 변호사로 일하는 삶보다 더 얻을 게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망설여진다.
상상만 해봤지만 정말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많이 벌고 사회적 명예가 높을수록 더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인 듯싶다.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래에 나쁜 결과와 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갈망은 그 어떤 전략적 고려보다 우선하고, 살지 않은 삶에 대한 고찰을 그런 의미를 만들어내거나 찾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우연한 새> 앤드루 H. 밀러
내가 살지 않은 삶을, 쓸데없는 상상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의 쓸모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 내 인생이 나름 의미 있다는 것을, 나에게 상당히 최적화되어 있구나, 일반 회사원으로서의 내 삶도 그리 나쁘진 않구나. 그나마 회사원 중에는 대기업 회사원이 최고 아닌가? (대단치 않지만 나는 대기업 팀장이다.) 적당한 수입과 워크라이프 밸런스, 스트레스, 모든 게 '적당'하다. 적당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까지는 아니지만 성실히 살아온 내 삶은 인풋(IN-PUT) 대비 아웃풋(OUT-PUT)이 대체적으로 더 낫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면서 내 삶이 나름은 의미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평범한 회사원으로서의 삶은 괜찮다. 그 자체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제는 지치고 지루해졌다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결국 나는 현재 내 인생의 만족감이 현저히 떨어졌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의 삶은 고통과 인내의 집합체이다. 퇴근 후 몇 시간, 그리고 주말만이 내가 숨 쉴 수 있는 시간으로 주어진다. 바닥까지 떨어진 에너지로 겨우 독서만 할 수 있다고 단정 짓고 책 읽는 일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려는 주요 대상은 인생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로, 자신의 운명을 개선해 보려는 노력은 보류한 채 타고난 신세와 때를 잘못 만난 것을 한탄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며 목청 높여 끈질기게 불만을 늘어놓는다. 나의 또 다른 대상은 겉으로는 부유하나 실은 가장 가난한 부류의 사람들, 즉 찌꺼기 같은 부를 축적했으나 그 부를 어떻게 써야 할지 또는 어떻게 버려야 할지를 몰라서 스스로 금과 은으로 된 족쇄를 만들어 찬 사람들이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읽는데 부끄러워진다. 나를 꾸짖는 것 같아서 반성하고 이렇게 다시금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내 인생에 만족하지 못한다. 하지만 개선해 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매일 한숨만 쉬고 인공지능에서 퇴사를 해도 될지, 퇴사를 하면 뭘 해 먹고살아야 할지 같은 질문을 백 번은 반복한다. (인공지능은 참 인내심이 좋다. 매번 같은 질문에도 항상 친절하게 답해준다.) 생각과 질문만 반복하며 그나마 회사는 그만두지 않고 착실하게 다닌다며 위안을 삼는다. '찌꺼기 같은 부'를 지키기 위해서, 지금 사는 집, 그리고 금융자산을 계속 불려 나가고 싶은 욕심을 나의 족쇄로 채웠다.
스스로의 목을 조이며 하루하루 살다가 문득 이렇게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것 같은 문구를 보면 다시 각성하고 책상에 않아 열심히 타이핑을 하며 글을 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해방감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다시 일과가 시작되고 회사라는 공간에서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면 단 한 글자도 타이핑하고 싶은 마음이, 뇌의 용량이 남아있지 않다고 나의 한계를 규정지어버리고 시간을 허비해 버린다. 그리고 투덜거림이 반복된다.
40대를 맞이한 직장인이 지금의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이제 일은 그만하고 싶고, 경제적으로 여유는 잃고 싶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싫다. 대부분이 이렇게 견디는 이유는 결국 '부, 富'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이 갖고 나의 자식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더 많이 물려주고 싶어서, 그렇게 편한 인생을 살고 싶어서.
그런데 정작 지금 나는 편하지가 않다. 금전적으로 부자가 되는 삶 만이 성공한 인생일까?라는 질문과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질문은 오늘도 계속된다. 다만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언제나 그렇듯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적어도 나의 운명을 스스로 그려나간다는 기분이 든다. 회사가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일'을, 더불어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선물처럼 주어진다. 모두가 한 번쯤, 아니 반복적으로 건강검진을 하듯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하는 질문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한 가지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