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행복한 미국병원 산후조리식
딱히 부족하지 않았던 병원의 케어링 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친정엄마도 보고싶고, 집에 돌아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남편이 갓 태어난 신생아 케어전쟁을 잘 할 수 있을지 산더미같은 걱정과 고민을 하느라 사실 머리도 아팠다. 한국처럼 2주간 충분히 나와 아기를 케어해줄 산후조리원도 없으니 생각할수록 막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닥칠 일이니 그 시간동안이라도 걱정은 뒤로 한채 쉬었어야했는데 말이다. 그때부터 점점 산후 호르몬이 널뛰기를 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요동치는 호르몬 지옥 속에서도, 다시 한번 출산을 한다면 미국병원에서 하고 싶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바로 “병원 음식”이다. 무릇 한국의 산후조리식이라 하면 “미역국” 말고는 생각나는게 없다. 조리원에서 매끼마다 성게미역국, 쇠고기미역국, 참치미역국, 가자미미역국 등등 온갖 종류의 미역국 돌려막기 식사를 한다고 들었다. 고춧가루나 고추장양념 없이 양념은 무조건 간장양념. 나중에는 질려서 몰래 남편을 시켜 햄버거를 먹었다는 친구의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인의 유전자에 “산후조리엔=미역국”이 각인이라도 되어있듯이 우리 남편은 별도로 준비해온 인스턴트 미역국을 나도 병원에서 먹긴했다. 왠지 안먹으면 산후조리의 기본도 안한 것 같은 괜한 죄책감이 들어서였다.
다시 생각해도 웃음만 나오는 미국 병원의 산후조리식. 사실 산후조리식이라고 할 이유도 없다. 미국인들이 평소 일상에서 먹는 다이너 음식들이었다. 주로 내 입맛엔 좀 많이 짠 편이라 미국음식을 결코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빵, 오믈렛, 프렌치토스트 등 브런치 메뉴는 2-3일에 한번은 챙겨먹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완벽한 식단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내가 입원기간동안 먹었던 메뉴들 몇가지의 사진들을 먼저 보면 아래와 같다. 치즈 듬뿍 들어간 피자, 크림소스 범벅 파스타, 케찹 신나게 뿌려먹는 오믈렛, 미국의 상징(?) 버거 같은 것들이었다. 사진엔 없지만 치킨도 있고, 파스타, 피자는 다른 종류들도 꽤 많았고, 빵은 말해 뭐하며, 프렌치 토스트 같은 다이너 메뉴는 물론이었다.
매끼마다 필수로 먹으라 하는 미역국이 없어서 정말 좋았다. 임신내내 아기 생각해서 먹어야 하는 음식들과 먹지 못하는 음식들이 많았는데, 아기 낳고나서까지도 내가 먹고 싶은 음식 못먹고, 먹기 싫은 음식 괜히 눈치봐서 먹어야하는 상황이 아닌 것이 좋았다. 듣기로는 한국 조리원에서는 유선 막히면 안된다구 먹지 못하는 기름지거나 밀가루 듬뿍 들어간 음식들을 여기서 “맛있게 잘먹으면 그게 바로 산후조리” 룰에 맞게, 신나게 먹을 수 있었다.
기본 메뉴들 말고, 미국 산후조리 음식의 ‘정점’이 있다. 바로 음료다. 임신 내내 눈치보면서 괜히 죄짓는 것처럼 먹었던 커피와 카페인 탄산음료들. 물론 나는 임신 중에도 솔찬히 잘 먹었지만, 내가 마시는 걸 보고 “그런거 마셔도돼?” 걱정 어린 시선과 함께 한마디씩 해주셨던 분들이 계시긴 했다. 백번 양보해서 임신 때야, 정말 아이가 내 품안에 있으니 걱정해주시는 마음을 감사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기를 건강하게 출산하고 난 직후에도 산모는 먹고 싶은걸 맘껏 못먹는다면 그 어찌 서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미국 병원에선 그런 고민이나, 실망 따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목이 마를 때 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나: “Can I get something to drink?”
간호사: “Sure, what do you want to drink?, we have Water, Coffee, Juice, Coke, Sprite, Gineger ale..
나: “Oh, Coffee please”
커피와 콜라를 옵션으로 주는 간호사라니.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갓 출산한 산모’가 마시고것 싶은 건 (술제외, 이건 산모가 아니더라도 뭐.. 당연히 몸 회복을 위해선 병원에서는 금지되는 음료니까) 모두 마실 수 있다는 환경이 정말 좋았다. 뭐든지 마실 수 있다니 좋았지만, 그 다음 간호사의 옵션(?)은 사실 좀 충격적이었다.
간호사: “With Ice?”
Ice?????? ICE????????????? 얼음???????
임신 중, ‘산후조리원’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그 곳의 산모들은 뼈에 바람이 들어갈까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수면양말을 신고 다녔다. 항상 따뜻한 차만 홀짝홀짝 마시던 모습도 기억난다. 그런데 무슨 ice 라니. 곧 죽어도 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인 ‘얼죽아’인간인 나는 실로 ‘할렐루야’를 외치고 싶었다. 얼굴만한 플라스틱 컵에 얼음이 가득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 한입 들이킨 순간 나도 모르게 “캬 이 맛이야!” 하고 외치고 싶었다. 나도 왠지 모르게 몸은 으슬으슬한 듯 몸살기운이 있어, 항상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수면양말을 신고, 침대 위에서 이불을 계속 덮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아’의 유혹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잠시나마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아기와 집으로 가서 진정한 육아의 세계로 뛰어들기 전, 엄마가 된 당장의 내가 아닌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브런치 부페에 와있는냥 맘껏 즐길 수 있었던 2박 3일이었다. 지
금 돌아봐도 좁디 좁은 병원 입원실 안에서 침대에서만 지내는 동안, 그나마 재밌게 즐길 수 있었던 식도락(?)이였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