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을 우울에게 도둑맞은 나에게,

인지적 협소화: 우울이 만드는 동굴 시야

by 틈새


우울할 때, 나는 동굴 속에 갇힌다.


드라마, 영화, 책, 게임… 무엇 하나 집중이 되지 않을 때가 있지. 유튜브 영상을 틀어도 화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결국 댓글 요약만 읽고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고. 친구들은 “엠지(MZ)라서 그런 거 아냐?” 하고 웃어넘기지만, 그게 단순히 세대 문제만은 아닐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어.


이상하게도, 오락을 위해 소비하는 모든 것들이 즐겁지가 않더라고. 현실을 잊기 위해 무언가를 보려 해도, 머릿속은 끝없이 회오리치는 느낌.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은 글을 쓸 때 뿐이지.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생각에 갇혀 사는 인간이 되어가는건가 걱정이 되었어.


심리학에서는 우울할 때 사고의 폭이 좁아지는 현상

*인지적 협소화(cognitive narrowing)라고 하더라. 쉽게 말해, 시야가 터널처럼 좁아진다는 뜻이야. 평소라면 여러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거나 주변의 자극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데, 우울한 상태에서는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거지. 이런 현상이 일어나면, 세상이 마치 흐려진 듯 보이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반응하는 속도가 느려지더라고. 사람들은 변함없이 대하지만, 마치 유리벽 너머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 같아. 대화 속에서 나만 몇 박자 늦고, 누군가가 말을 걸어도 그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고.


사람들이 4차원이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사실은 그 말이 내 동굴 시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어. 문명이나 기기에도 지독히도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이 또한 동굴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시야가 제한되듯, 우울한 상태에서는 관심의 초점이 극도로 협소해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 머릿속이 온통 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으로 채워져 있어, 외부의 것들을 세밀하게 읽어내기가 어려워지는 것 아닐까.


그런데도, 글을 쓸 때만큼은 집중할 수 있었지. 책도, 영화도, 게임도 아닌데, 내 생각을 적어 내려갈 때는 오히려 몰입이 되는거야. 좁아진 시야 속에서 나는 바깥세상을 인식하는 대신, 안의 생각을 더욱 선명하게 들여다보게 되는거지. 외부의 자극은 흐릿해지지만, 자신에게 집중하는 능력은 오히려 극대화되는 느낌. 글쓰기는 그 좁아진 시야를 따라가며 생각을 형태로 만들어주는 과정인가 싶더라.


결국, 내가 오락에는 집중하지 못하면서도 글을 쓸 때만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 세계가 너무 좁아져, 외부를 인식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동굴 속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동굴 속에서 글을 쓰다 이대로 죽을 순 없는데 말이야. 생각해보면, 이미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아. 처음에는 안식처 같았어. 외부의 소음이 줄어들고,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공간이니까. 세상이 복잡하고 피곤할 때, 이곳은 나를 보호해 주는 것 같았어. 하지만 점점 깨닫게 되었어. 이 동굴은 내 피난처가 아니라 감옥이라는 것을. 안전하지만, 동시에 갇혀 있는 느낌.


그래 이제는 밖으로 나가야 해. 그런데 어떻게? 어두운 곳에서 빛을 찾아야 한다는 말은 너무 막연하더라. 우울할 때 “운동해라”, “산책해라”, “일단 밖에 나가봐” 같은 조언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만 같더라고. 그런 말들은 모두, 이미 동굴 밖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처럼 들린다. 나는 아직 이 안에 있는데 말이야.


그러면, 동굴 속에서 나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요즘 이에대한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 아이러니하게도, 탈출하려고 발버둥칠수록 길이 보이지 않았어. 동굴시야는 시야를 좁혔지. 그러니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질문부터가너무 크고 막연할 수밖에 없었어. 대신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지. 예를 들어, 글을 써. 지금 이 편지같은. 그러면 한 가지 더 해볼 수 있는 것이 있지. 바로, 남이 쓴 글을 읽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내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이 잠시라도 끊길 것이다. 그게 한 문장이든, 한 단락이든, 나를 바깥과 연결하는 끈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종종 친구들의 편지를 읽고 엉엉 울었던건가. 그래러 그렇게도 친구들에게 선물말고 편지를 달라고 했던걸까. 어제 받은 생일편지를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어. 잊고 있었던 내가 그 순간 순간에 받았던 소중한 마음들이 담겨져 있더라고. 아아 동굴에 갇히면 가장 슬픈점은 나를 향한누군가의 사랑도 볼 수 없게 되는거구나. 그래서 조금 이상한 결론이지만, 편지와 책과 시 그래, 글들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어.


동굴 속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글이 통로가 될 수도 있는 것 같아. 읽고, 쓰고, 다시 읽으며,그 렇게 조금씩 동굴의 벽을 넓혀 나갈 수 있을 것 같아.그 편지를 다시 읽으며 느꼈던 온기를 기억했으면 좋겠어.그리고 언젠가, 내 글이 누군가의 편지가 될 수도 있었으면좋겠어.


집중력이 없다고 오해받는게

억울한 나로부터,


P.S. 우울은 언제나 삶의 주요한 화두였어. 누가봐도 밝아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밝음의 기저에는 행복이 아닌 예의가 있었거든. 우울이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것이 싫어 밝음을 택하는거지. 그러나 그런 밝음도 시간이 지나니 점점 한계가 오는 듯 했어. 그리고 오히려 그 밝음이 우울을 키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 우울과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우울을 이해하기 시작했어.

부모님은 그런걸 보면 우울에 더 빠지는거 아니냐 하고 염려하곤 하셨지만, 우울의 이해가 연대와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나만의 믿음이 어느 날 부터인가 생기기 시작했어. 어쩌면 오락이 즐겁지 않은 이유는 그런 우울을 해결하는 척하지만 실은 회피 수단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인걸까. 아무튼간에 집중력 부족으로 오해받는건 너무 억울하니 글을 더 가까이 해야지 다짐할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