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예민한 나에게,

HSP(매우 예민한 사람): 예민한만큼 사랑스러운 사람

by 틈새


당신의 차를 운전하는 꿈을 꿨어요. 당신의 차를 어딘가에 옮겨달라는 부탁을 받았죠. 나는 분명 차도를 달리고 있었는데, 인도가 되어 있었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죠. 차는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맞아요, 내가 지금 기분이 그래요. 인도를 달리는 차 같아요. 그런데 심지어 그 차는 내 차도 아닌 당신 차죠.


그날 꾼 꿈을 일어나자마자 남자친구에게 말하려다가 말고는 괜히 부치지도 않을 편지를 끄적였다고 했지? 평소엔 남자친구에게 ’야, 너, 이 새끼‘라는 말을 장난 섞어 쓰곤 하면서도 고쳐야지 다짐했지만, 편지에 만큼은 당신이라는 존경의 말을 쓰고팠다고도 했지. 그 편지를 쓴 이유를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 같아. 특유의 재미난 그 버릇 있잖아. 꿈만 꾸면 꼭 기록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버릇. 특히 꿈을 꾼 후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더 그랬지.


단순히 운전 연습을 시작해서 꾼 꿈이겠거니 하려다가 문득 최근 느꼈던 불편감들을 떠올렸어. 집 근처 학교에 기간제 상담교사로 취업을 했지만,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많았지. 상담 환경이 너무도 열악했으니까. 풋살을 해도 모임 운영이 마음 같지 않았어. 다들 참석 제도가 공정하다고 하는데 그래 보이지 않았으니까. 연애도 글쎄... 뜻대로 되지 않았지. 원래 변수 투성이인 연애 자체를 좋아하지를 않았잖아. 다들 어떻게 그렇게 통제 불가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지 의문스럽기도 하고, 예민한 성향이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정말이지 잘 모르겠어.


어쩌면 남들처럼 묵묵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한 걸까? 아니면, 받아들이기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걸까? 다들 참는 걸까, 아니면 사실은 누구나 불편한데 그냥 말하지 않을 뿐일까?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아니면 오히려 가장 솔직한 걸까?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저 꿈속에서 차도를 달리다 차도가 사라져 멈춰버린 차처럼,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예전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었어. 방향을 잃었다고 느낄 때, 늘 이렇게 글을 썼지. 꿈을 기록하고, 의미를 찾고, 감정을 정리하고. 그게 무슨 해결책이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있었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끄적이고 있나 봐. 답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씩 꺼내어 정리하는 것. 어쩌면 이 편지 역시, 도로를 찾기 위한 또 하나의 작은 신호일지도 몰라.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계속 써보려고 해.


지나치게 많은 생각들을 잊기 위해 밀리의 서재라는 온라인 책 플랫폼에서 이 책 저 책 건드려도 보고, 운동도 해보고, 사람을 만나도 보고, 요리도 해보고, 이 모든 것들을 기록도 해봤는데도 왜 늘 마음이 불편한 걸까. 그러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 즉,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는 단어를 발견했어. HSP는 엘레인 아론(Elaine Aron)이 정의한 개념으로, 일반 사람들보다 감각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깊은 내면 처리를 하는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해. 감정에 강하게 반응하고, 타인의 기분을 쉽게 감지하며, 사소한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 특성이 있지. 작은 파동에도 쉽게 흔들린다는 얘기야. 그리고 때론 고작 이런 정의 하나가 위로가 되기도 하지. 이런 사람이 세상에 나 하나뿐인 건 아닌 그 느낌, 소외에서 조금 벗어난 듯한 그 느낌, 얄팍하지만 소중한 연대감 같은 거 있잖아.


꿈을 분석하고 감정을 해석하려는 것도 어쩌면 그 민감함의 일부인가 보다. 남들은 그냥 지나칠 일에도 의미를 찾고, 차도의 끝에서 멈춰 선 차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 사실 그런 고민조차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고민이 결국엔 본인만의 길을 찾게 해 주려나.


다만 늘 너무 걱정이 되긴 해. 자꾸만 아프잖아.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으로 다 티가 나버리잖아. 특히 일요일, 싫어하는 예배를 부모님을 위해 드려야 하고, 운동 휴무일이라 운동도 가지 못하는 날이면 더 취약했지. 그런데 오늘은 시간이 떠서 만나고 싶었던 남자친구도 귀찮다고 만나주지 않아 속상했지? 그러나 그 속상함을 통해 남자친구나 인생이나 학교나 풋살모임이나 그 모든 것들이 이래야만 한다는 생각 자체가 환상이란 생각을 하기도 했을 거야.


편지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어. 다시 차 얘기를 해야겠다. 아까 꿈에서 갈 길을 잃었던 차 말이야, 차에서 그냥 내려서 인도로 걸어도 되고, 숲이나 바다를 찾아 거닐어도 된다는 얘기를 하며 편지를 마무리하고 싶어. 둔감한 사람들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차도를 차를 타고 달리면 그만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길이 필요하기도 한 법이야. 그러니 남의 차나 누가 만들어 놓은 길로 꿈에 표현된 괜한 타인의 기대나 책임감에 얽매이지 말고 본인만의 길을 갔으면 좋겠어. 힘들겠지만, 그 길은 그 어떤 길보다도 오롯한 길일 거야.


예민의 힘을 믿은 나로부터.


P.S. 여전히 학교도, 풋살 모임도, 연애도 다 엉망일지라도 너의 예민한 그 감각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 분명히 올 거야. 그 순간이 언제 올지를 몰라 힘들긴 하겠지만 와야만하는 순간은 오게 되어 있다고 믿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