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정 쿠폰을 쓰기 위해 앱을 깔았다. 말은 쉽게 했지만, 사실 나에겐 꽤 큰 일이다. 새로운 앱을 설치하고, 기능을 익히고, 낯선 방식으로 무언가를 해결해내는 일. 나는 그런 일에 종종 주춤한다. 이번에도 한참을 헤매다 결국 ‘그냥 말지’ 하고 포기하려던 찰나, 문득 마음이 단단해졌다. 돈을 아끼기 위한 마음이, 어쩌면 아주 작고 은밀한 자존심이, 나를 다시 붙잡았다. 나는 요즘, 내 안의 작고 묵은 자존심들을 다시 꺼내보고 있다. 참는 법보다 말하는 법이 더나에게 맞는 건 아닐까 하고.
요아정은 예전에도 몇 번 먹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과일과 꿀, 예쁜 초코쉘 위에 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 보기엔 참 예뻤다. 하지만 내 입엔… 늘 아쉬웠다. 단맛과 향이 부딪히고, 질감이 흩어지고, 도무지 입안에서 조화를이루지 못했다. 사람들의 취향에 나를 억지로 맞춘 맛이었다. 나는 그렇게 요아정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를 규정해버렸다.
그날, 비가 오고 나가기 귀찮던 날, 나는 다시 요아정을 시도했다. 이번엔 아무런 기대도 없이. 대신 내가 원하는 것들로만 구성했다. 오레오, 딸기팝, 치즈, 돼지바 뿌리기까지. 달고, 꼬달꼬달하고, 팝팝 터지는 맛들. 내 안의 어린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 그렇게 도착한 디저트는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요아정이 맛있다고 느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만든 요아정이 맛있었다.
나는 요아정을 싫어했던 게 아니었다. 다만, 사람들의 방식대로 먹는 요아정을 싫어했던 것이다. 내 입에 맞지 않는조합을 억지로 받아들이는 그 과정이 싫었던 것이다. 이 깨달음은 상담실에서의 내 감정과도 닿아 있었다. 최근, 교직원 심리상담이 무료라는 소식을 듣고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말은 쉽게 했지만, 그것도 내겐 꽤 큰 일이었다. 상담을 받으며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얼마나 오해하고 살았는지를. 참는 법을 배우며, 말하는 법을 잊고 있었던 나를. 남에게 맞추는 게 습관이 되어버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잊고 있었던 나를.
엄마 아빠는 참는 법을 가르쳤다. 사회는 두루두루 잘 지내는 법을 가르쳤다. 덕분에 크게 어긋난 적은 없었다. 그 나름의 편안함 속에서 나는 나름의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나는 점점 숨이 차올랐다. 나를 자꾸 눌러 담는 그 ‘착한 사람의 틀’ 속에서. 나는 혼자서도 잘 해내는 사람이 좋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솔직하게, 담백하게, 때로는 날카롭게라도. 나는 그런 나를 더 좋아한다. 이제는 안다. 말함은 무겁지 않다. 오히려 참는 것이 삶을 무겁게 만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입으로 꺼냈을 때, 세상은 조금 더 가벼워진다. 오레오와 돼지바 가루처럼 진하고 복잡한 감정들도, 말로 풀어내면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워진다.
나는 요아정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말함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을 만큼 좋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