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냉전 이틀 차. 생각보다 오래 가는 중이다. 싸우는 주제는 늘 비슷하다. 나는 지금 사립학교에서 기간제로 일하고 있다. 주변을 보면 장기 근무도 어찌저찌 가능한 것 같긴 한데, 괜한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있다. 교사로 일하고 있음에도, 말을 꺼내면 사람들이 임용에 합격한 줄 알까 봐 부끄럽기도 하다. 사실 고용 안정성이 매력으로 강조되는 연애나 결혼 프로그램에 나갈 것도 아니고, 아무도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도 나를 가장 아프게 긁는 건, 엄마다.
“가까운 학교에서 일하는 게 하나님 은혜 아니니? 참 공의로우신 분이야.”
“공의로우시면 임용 붙었겠지.”
“그건 네 실력이 부족한 거잖아. 공정한 거지.”
“논리는 똑같이 적용돼야 하는 거 아니야? 잘되면 하나님 덕, 못되면 내 탓? 무슨 하나님이 그래?”
“…… 말을 말자.”
언젠가는 나도 신앙심이 있었던 것 같다. 모태신앙으로 자란 나는 늘 교회에 살았다. 신앙심이 멀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신앙인들의 모순에 의문을 느끼면서부터였을까, 단체 생활이 싫어지면서부터였을까,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이유로 자꾸만 나를 믿지 못하게 되는 사고방식이 스며들면서부터였을까.
요즘 나는 교회 안 가기 캠페인 중이다. 다음 주부터는 어쩔 수 없이 끌려갈 것 같지만, 이번 달은 몸도 안 좋고 연수도 있어서 무사히(?) 교회 땡땡이를 칠 수 있었다. 연수를 마치고, 주말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조금 비싸지만 새로 생긴 북카페에 갔다. 엄마와 냉전 중이라, 이상하게도 ‘안 해본 걸 해보자’는 힘이 생겼다. 집을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북카페는 Y와 자주 갔지만 혼자 운전해서 간 건 처음이었다. 해야 할 공부와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간 것이었지만, 막상 가보니 북카페에 놓인 책에 이끌려 계획과 다르게시간을 보냈다. 이상하지, 예전엔 계획대로 되어야만 만족감을 느꼈는데 요즘은 계획이 틀어진 순간에 찾아온 예상치 못한 발견에 만족감을 크게 느낀다. 홀린 듯 읽게 된 건,시각장애인 마사지사의 에세이였다. 상까지 받은 책이라더니, 제목도 우악스러워서 마음에 들었다.
Y의 회사에도 시각장애인 마사지사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우리 둘의 인생에 잠시나마 등장했던 존재가 책의 주인공으로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는 즐거움이있었다. 책을 읽다가, 나는 또 울었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장면에서는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지금은 엄마와 화해하고 싶진 않지만, 이 싸움에 승자는 없고 마음이다친 사람들만 남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와는 결이 다르지만, 자주 우울한 나는 마음에 장애가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고군분투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그녀를 응원하면서, 나는 어느새 나 자신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때, 사랑스러운 불청객이 찾아왔다. 날 언제 봤다고, 얼굴을 들이대고 내 옆에 또아리를 틀고 잠들다니. 북카페 사장님의 반려견인 듯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마구 달려들지는 않는 조용히 곁을 내어주는 강아지였다. Y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담긴 책만이 자기에게 남는다고 말한다. 반면 나는, 나의 계획을 무너뜨릴 만큼 감동을 주고 마음을 쉬게해주는 책이 좋다. Y는 새롭고 세련된 도시적인 공간을 좋아한다. 나는 이 북카페처럼 작고 소박한, 그러면서도 아늑한 공간을 좋아한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는 각자의 신이 다른 곳에 있을 뿐이라는 것을. Y는 현실적인 문제의 효율적인 해결책들 속에서 신을 보고, 엄마는 교회와 하늘에서 신을 보고, 나는 책과 강아지, 풀리는 마음 속에서 신을 본다. 엄마, 나의 신은 교회나 하늘에 있는 게 아니야. 내게거리를 주고, 그러면서도 곁을 내어주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 있어.
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그저 담담히, 묵묵히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나는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해주는 그런 모습. 그래서였을까. 회사가 더욱 지옥처럼 느껴졌던 것도, 엄마의 신이 내게 지옥처럼 느껴졌던 것도. 하지만 내 신은, 그 지옥을 또 살아내고
자기에게 오라고 조용히 손짓하는 것 같았다. 그거면, 나는 충분했다. 거리를 두는 그 마음 사이에 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