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난 그 전쟁을 사랑하고 있을 뿐이야
회사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누가 봐도 경계해야 할 사람, 때때로 불편한 기운을 풍기는 사람, 그리고 너무 따뜻해서 오히려 의심할 수 없는 사람. 나는 그중 마지막 사람에게 통수를 세게 맞았다. 내 일요병의 구원자일 줄 알았는데… 구원자는 개뿔. 지금은 솔직히, 한 대 쥐어박고 싶다.
K는 늘 친절한 사람이었다. 조용히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고, 지쳤을 때는 농담도 건넸다. 모든 게 지긋지긋한 날에도, K와 대화하고 나면 어딘가 숨통이 트였다. 나는 그 사람을 믿었다. ‘적어도 이 사람은 내 편이겠구나’ ‘회사에서 이런 동료가 있다는 건 다행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K는 말하곤 했다. “내 옆에 있으면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을거야” 듣기에 참 좋은 말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말은 결국 부정적인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친절을 퍼붓더니, 작은 오해가 생겼을 때, 감정이 어긋났을 때,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진심이 넘치는 듯 진중한 사람인 듯 행동하던 K는 이 관계에서 그냥 조용히, 아무 말 없이, 가볍게 발을 뺐다. 너무 조용하게,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마치 거기엔 아무 감정도 없었던 것처럼. 남겨진 사람에 대한 조금의 배려도 없이.
뒤늦게 깨달았다. 그 사람이 내게 건넨 다정한 말들은 결국그의 이미지였고, 나는 그 이미지에 내 감정을 기대고 있었다는 것을. 나 혼자 마음을 풀고, 나 혼자 안심하고, 나 혼자 기대고 있었다는 걸. 물론 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 불편한 감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수도 있고, 그저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방식대로의 전쟁이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더 큰 사람이 되자고. 더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어서, 타인들의 전쟁까지, 사랑해야지. 이해와 사랑이 나의 싸우는 방식이니까. 우리는 저마다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너무 힘들어서 결국 남의 상처엔 무심해질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되겠지. 남의 상처에 무뎌지는 순간, 결국 자기 상처에도 무뎌지게 된다는 걸. 그래서 나는, 저마다의 전쟁마저도 사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너를 사랑하는 일이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고, 나를 사랑하는 일이 결국 다시 너를 사랑하는 길이라는걸, 나는 요즘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니까. 그렇게 기대는 조금 내려놓고 사랑은 가득 싣고 출근을 또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