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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Jul 26. 2023

그대라는 우산

- 아빠, 비 와요. 빗방울이 뺨에 톡 떨어졌어요.

- 이런, 그렇네. 울 공주들 춥겠다. 잠깐만.

흐른 하늘이 결국은 비를 쏟아 내네요. 갑자기 퍼붓는 초여름 소낙비에 당황한 우리를 근처 건물 처마 밑으로 피신시키고 부랴부랴 다시 빗속을 달리는 그대를 봅니다. 바쁜 시간 쪼개어 간만에 나선 가족 나들이에 엉뚱하게도 소낙비를 만났네요. 공원 여기저기 장식된 꽃들보다 두 딸이 더 이쁘다며 연신 부비던 아이들의 붉은 뺨에 빗방울이 맺혀 있네요. 우리 앞을 급히 뛰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두 딸을 품에 꼭 안아봅니다. 산 속 들판 놀이공원인데다 산그늘마저 늘어지니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나도 한기가 느껴져 아이들에게 무릎 담요를 둘러 줍니다.


- 아빠 왜 안 와요?


맑은 눈동자에 걱정이 한가득입니다.


- 조금만 기다려 보자.


저 멀리 샛노란 우산 하나가 둥둥 공중에서 그네 뛰듯 달려옵니다. 우산이라기엔 너무 커서 어디 파라솔을 가져온 듯 하더라구요.


- 우와, 아빠다. 우산이 엄~청 커요.

  내 유치원 가방이랑 색깔이 같아요.

- 아빠, 최고.


두 발을 방방거리며 딸들이 좋아합니다. 커다란 우산 속에서 뱅그르 도는 딸의 무릎 담요가 동그랗게 펼쳐져 같이 춤을 춥니다. 영락없는 빨간 망토 요정입니다.


- 잠깐만, 공주님들.


 산만으로 안되겠다 싶은지 비옷까지 챙겨왔네요. 이미 당신은 어깨와 등까지 젖어 김이 나는 줄도 모르고, 아이들에게 비옷을 꼼꼼히 입힙니다. 여전히 제법 쏟아지는 빗속에 그대라는 큰 우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토도독 토도도독 우산 위로 굵게 듣는 빗방울 소리가 경쾌한 음악으로 들리네요.


- 자, 공주님들.

  이제 걱정 말고 놀아볼까?

- 야호! 신난다.


좀 전까지 걱정거리이던 비가 이제는 동무가 됩니다. 그대라는 커다란 우산이 만들어준 그늘 아래 걱정은 들어오지 못합니다. 비님도 우리와 같이 즐길 길동무가 되어 따라 오네요. 신나는 음악 연주를 곁들여 줍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한 폭의 짧은 추억입니다. 그 날의 어떤 기억보다 선명히 남은 그대와 노란 우산입니다. 그 뒤로도 우리들의 변함없는 우산이 되어 준 그대에 대한 나의 믿음 한 켠을 미소로 추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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