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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담 Oct 11. 2023

[독서후기]그리움의 다양함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이희영 작가 신작

  소중했던 한 사람의 영원한 부재 즉 사별 이후, 남은 이들은 그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분명 한 사람이나 각자 다르게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나에게는 더 없이 다정했던 그가 또다른 타인에게는 냉랭한 합리주의자로 기억되기도 하니. 이런 생각은 언제일지 알 수 없으나 나 또한 그 부재의 대상이 되었을 때 남은 이들이 나를 어찌 기억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할지로 이어지면서 다소 섬뜩하기까지 다. 점점 더 죽음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소중한 이들을 먼저 보내는 원치 않는 이별을 겪으니 더더욱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남은 자의 의무일까. 그들을 애도하고 그리워하며 헛되지 않게 그들 몫까지 잘 살아내는 것이.


  어느 밤, 말도 없이 집을 나간 뒤 교통사고로 죽은 형, 영원한 고2 18세 선우 진.

그를 남은 이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기억한다. 부모에게는 애교 많고 다정한 아들로, 동생을 지극히 아끼는 멋진 형으로, 다정하고 모범적인 친구로, 착하고 무던한 학생으로, 혹은 오랜 시간 가슴에 새겨진 첫사랑으로 다 다르게 기억하며 그를 그리워한다. 과연 어느 모습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13살 차이의 형과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 후 형의 그림자를 찾으며 여러 모습의 형을 만나는 동생 선우 혁에게 어떤 모습이 진짜 형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리워만 하며 끄집어내지 못했던 형의 옛 모습을 보는 것이 중요하며, 잊고 있었으나 아픔이었던 형과의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이 중요했다. 모두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추억되고 기억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그 모두가 다 그리움의 다른 옷일 뿐이다. '모두에게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하는 기억은 없다'라는 말에 십분 공감해 본다.


  13살 차이의 쌍둥이처럼 닮았으나 기억에는 없는 형의 그림자 같은 비밀을 찾아내려는 동생 선우 혁의 사고와 행동을 좇아 자연스럽게 집중해 읽게 되는 매력이 있다. 대중화되고 있다하나 아직은 낯선 메타버스라는 소재를 이용한 것에도 관심이 컸다.  주요 교육용 교재와 학생들의 여가용 도구로 활용되는 현실이니 학생들에게도 쉽게 다가가는 소재일 것이다. 매체 수단만 달라졌을 뿐 그 속에서도 소외 당하는 학생은 있고, 또 누군가의 숨겨진 그리움의 공간이기도 했다. 아들을 잃고 그 방을 십여 년 그대로 유지하는 부모 마음도, 형의 존재를 친한 친구에게조차 털어 놓지 못하는 혁의 마음도, 자신이 무심코 한 말에 의해 친구가 사고를 당했다 자책하며 그와 함께했던 추억의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해송의 마음도 모두가 아픔이었고 그리움 덩어리였다. 그 아픔 속에 있었던 귤을 소재로 겨울 같은 긴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현재 동생 혁과 과거 형의 비밀 친구 해송이 이제는 좋아했던 새콤한 귤을 제대로 먹을 수 있기를 바랐다.


  소설 서사 중간중간에 해결의 열쇠처럼 제시해주는 해송의 열 개의 편지 속 형은 동생 혁의 기억과는 다른, 친구이자 첫사랑의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잃어버린 친구와의 추억이 가득한 모교의 교사로 근무하면서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아픔과 그리움의 추억을 써내려간 그녀의 편지는 다시 살고자 하는 의지의 다른 고백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현재 학생들도 공감할 수 있는 학교 생활과 교우 관계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면도 많았다. 청소년 소설로 입지를 다진 작가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과하지 않은 청소년 갈등과 해결의 실마리 제시도 좋았다.


  퇴근 길에 귤빛 황금 노을을 바라보며 재래시장에서 귤이라도 사서 가족들과 다같이 새콤달콤한 귤 입안에 가득 넣고 다같이 떠들고 싶어진다. 서로 더 사랑하자고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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