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내려앉은 찬 공기에 천지가 조심스럽고, 침묵하는 겨울이다. 오늘도 나는 글을 풀어보나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문자로 얽혀진 내 글이 진한 향기로 남아 오래 기억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옛 연인의 향기처럼, 잔향을 남겨 돌아보게 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런 욕심은 오히려 글을 쓰지 못하게 했다.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면 악착같이 써내려는 끈기라도 있어야 하건만, 그저 스스로 실망하는 나에게 실망 중이다. 어린 나이에 멋모르고 쓴, 멋부린 글들이 불러온 섣부른 칭찬들이 나에게 독이 된 것은 아닌지. 늘 돌아갈 곳은 '글쟁이'이다 여기고 있으나 정작 글은 나를 부르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설익은 사고와 신념은 올바른 길 안내를 해 주지 못한다. 그저 뱉고 싶다는 조바심에 자꾸 얕은 글만 끄적이는 것은 아닌지. 브런치 안에서만도 무궁무진한 글감을 지니고 유려하게 글을 풀어내는 작가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부러우면 지는 거랬는데, 난 매일 지는 패잔병이다.
때로는 긴 말보다 침묵이 더 큰 의미로 다가가기도 하듯이, 나 역시 침묵의 계절을 보내야하나 싶다. 날개짓을 멈추는 새들처럼, 꺼낼 것 없는 속을 자꾸 헤집지 말아야겠다. 다 떨궈낸 맨몸 그대로 겨울을 이겨내는 나목처럼 온통 멋부린 치장을 다 거둬내고싶다.
언제나 너른 품 그대로 깊은 속내 드러내지 않고 고요함을 전하는 바다처럼, 한 해의 끝 이 겨울, 잔잔히 평정의 침묵을 가져볼까 한다. 내년 새롭게 돋아나는 상념들로 가득채워질 날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