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나고 자라서일까. 나에게 겨울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 온 나라가 꿍꽁 얼었다는 한파 소식에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겨울에는 잘 움직이지 않는 탓도 있을 것이고, 행동 반경이래야 집과 직장이며, 대중교통을 잘 이용하지 않으니 그다지 날씨에 민감하지 않은 탓이리라. 어릴 때부터 멀미가 심한 편이라, 운전이 거친 기사가 모는 버스나 택시는 여지없이 중간에 내려 숨을 고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희한하게 내가 직접 운전할 때는 멀미가 안 나니, 나에게 자가운전은 그저 이동을 위한 생존 수단이다. 자가용은 무엇보다 이동수단으로서 효용가치가 가장 크니, 신차에 대한 욕심도, 차 인테리어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저 무사히 이동하게 해 줄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혹여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자가용이라도 조수석이 아닌, 뒷자리에 앉으면 멀미가 괴롭혀 여행 초반부터 진땀을 뺀다. 그리하여 거의 내 차로 이동하자는 제안을 하고 기사를 자처하니 누가 싫다하랴. 물론 좋은 장소에서 술 한 잔이 아쉬워 후회하기도 하나, 사실 알코올과도 친하지 않다. 쓰다 보니 참 멋 없다 싶으나 나름의 내 인생 즐기기 기준이 있다 보니, 타인에 맞추지는 않는 편이다. 나를 잘 아니 맞추어 즐기면 된다.
제일 아쉬운 것은 비행기를 잘 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멋 모르고 갔던 첫 해외여행에서 압력을 견디지 못한 귓병으로 이국 도착 후 이틀을, 귀국 후 일주일을 앓았다. 한 번 움직이려면 미리 병원 약이며 마음가짐까지 준비할 일이 두려워 거의 비행기는 그림의 떡이다. 휴가기간 해외여행 다녀온 친구들의 자랑을 듣노라면 내색은 크게 하지 않으나 부러움에 집에 와선 괜시리 내 귓병에 대한 검색만 해댄다. 의사선생님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인터넷에 명약이 있을 리 없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결국 여행 반경도 좁다. 사실 사계절이 아름다운 우리 강산도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다닐 수록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한 번 가서 큰 감동 받은 곳은 그 계절이면 꼭 다시 찾게 된다. 게다가 자연 풍광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키워 낸 문학, 미술, 음악 등 예술 공연이나 관람까지 곁들이면 아직 볼 것들은 너무 많다.
이래저래 여행 이력을 돌아보니, 그래도 겨울에 제일 움직이지 않았음을 알았다. 무주로 멋 모르고 호기롭게 나섰다가 눈길 운전에 차가 헛돈 경험 후 크게 놀라 되도록 겨울여행은 자제한 탓도 있다. 물론 하얀 설원에서 라브스토리 주인공마냥 드러누워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깔깔거렸던 기억은 항상 미소짓게 한다. 하이얀 설원은 그대로 마음에도 젖어들어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매력이 있다.
올해 유달리 더위가 늦가을까지 지속된 탓인지 단풍이 영 부실했다. 자연은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진리 속에 인간의 이기적 개발에 기후는 제 궤도에서 자꾸 틀어진다. 가을이 준 실망때문일까 올 겨울은 반드시 흰 눈 속에 다시 뒹굴어보자는 용기가 생긴다. 얼른 크리스마스 연휴를 끼고 강릉 호텔을 예약하고, 인제 자작나무 숲까지, 그리고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 문학관 탐방 코스까지 일정을 잡았다. 설원 속 자작나무 숲의 경관은 반드시 보고 싶었다. 그들의 겨울 낮은 숨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그리고 고항 남쪽 겨울 바다와 다른 동해의 너른 품도 꼭 봐야겠다.
올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여행은 가기 전 설렘이 행복의 반을 차지한다. 용기내어 겨울의 참맛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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