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을 꿈 꾼 <노무현대통령>을 만나다

-오월의 봉하마을

by 다담

아쉬움은 그리움과 늘 같이 한다.

특히나 현재 처한 상황이 결핍의 허전함으로 빈자리가 크면, 과거는 더욱 불쑥불쑥 다가와 그리움으로 통증을 준다.

그리하여 매일 정치적 이슈으로 뉴스가 도배되는 혼란한 정국에 쓰린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는 봉화마을이 떠오른다. 그분이 떠오른다.

때마침 오월이다. 계절의 여왕답게 길가 샛노란 금계국이며 화려한 작약이며 붉은 장미의 향연으로 아찔한 이 계절에 어찌 그리 가셨는지.

그리하여 더욱 그립고, 아쉽다.


<대통령의 집> 뒤편 산자락 공터는 잔디 공원으로 조성되어, 많은 시민들이 한가한 오월을 즐기고 있다. 연을 날리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이를 지켜 보는 부모들의 흐뭇함, 시골 장터마냥 뻥튀기 기계에서 터지는 굉음에 움찔거리는 사람들, 느긋하게 잔디 위에 누워 햇살을 즐기는 이들, 일상의 행복이 모여 있다.

공원 왼편 길자락에는 그의 일대기를 설명과 사진이 곁들인 게시물이 나란히 줄 서 있고,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끈다.


※ 아래는 그 게시 내용을 정성을 다하여 필사하는 마음으로 옮겨 본 것이다.

5월 23일에 맞추어 올리고 싶은 간절함에 일하는 짬짬이 수고를 하면서도, 먹먹해지는 마음에 가슴이 아렸다.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 지금 이 시기에 더욱 주옥같이 필요하기에 더 와닿는다.


사람사는 세상을 향한 그 뜨거웠던 인생의 발자취

국민과 민주주의를 사랑한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1946년 9월 1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태어났다.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재직하다 군사정권의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가 되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에 당선, 정치에 입문한 뒤 제5공화국비리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활동하면서 '청문회 스타'로 국민들의 각광을 받았다.

1990년 독재 청산을 좌절시키고 지역주의를 노골화한 3당 합당(당시 4당 체제에서 집권여당과 두 야당이 합당)에 반대하며 야권통합을 주도해 민주당을 출범시켰다.지역주의 극복과 국민통합은 이후 정치인 노무현 필생의 과제가 됐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해 낙선하고, 1995년 부산시장 선거와 1996년 15대 총선에서도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1998년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었으나, 2000년 16대 총선 때는 지역주의 극복을 선언하며 다시 부산에서 출마해 낙선했다.

이로 인해 시민들로부터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탄생했다. 이후 국민의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고, 2002년 국미참여 경선에서'노풍'을 일으키며,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재임시절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탈권위, 참여, 자율, 분권의 리더십으로 국정 전반을 개혁했다.

2008년 2월25일 퇴임과 함께 역대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귀향했고, 주민들과 함께 친환경생태농업을 중심으로 살기 좋은 농촌 만들기에 정성을 쏟았다.

2009년 5월 23일, 고향봉하 마을에서 서거했다.


1. 작은 고추가 맵습니다.

-작은 체구에 자기 주장이 뚜렷한 모범생


초등학교 은사들은 소년 노무현을 체구는 작지만,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공부 잘한 모범생으로 기억한다. 4학년 담임 김종대는 "첫 수업에 앞자리에 앉은 키 작은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학년 내내 학습태도도 좋았고, 반에서 인기가 많았다. 학급 임원을 맡아 자습 시간엔 아이들의 학습 지도도 했으며, 굉장히 부지런했다."라고 회고한다.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하고 가까운 우리에게만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

넓은 우리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2007년 6월 2일 참여정부평가포럼 연설 중

2. 비겁하게 살지 않겠다.

-인권변호사와 6월 항쟁


1981년 부림 사건 이후 노무현 변호사는 학생, 노동 시건의 무료 변론에 적극 나섰고,1982년 5월에는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1987년 2월 박종철 군 추모집회에 참석해 집시법 등 위반 혐의로 검찰이 하룻밤새 네 차례나 구속영장을 신청하였으나, 모두 기각당한다.

9월에는 대우조선 노사분규사건으로 부산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23일 만에 석방되었다. 이때 구속적부심사부터 판결까지 부산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과 고 조영래 변호사를 비롯 총 99명의 변호인단이 참여했다.

비겁하게 살지 않겠다!

-부산 지역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1981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일으킨 용공조작 사건 '부림 사건'의 변론을 맡아 교도소에서 불법 구금과 구타, 고문을 당한 청년들을 만난 뒤 한 말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보상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고 그 행사는 시민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법조인이라도 법률적 방법으로 대응해서는 스스로의 권리는 물론 시민의 권리조차 옹호할 방법이 없습니다.

-1987년 2월 19일, 고 박종철 군 추모집회 참석 후 부산시지검에 기소되어

"법조인으로서 피의자의 행동이 너무 정치적이거나 지나치지 않느냐"라는 검사의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3.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 노동현장과 청문회 스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거, 입는 거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이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1988년 7월 8일, 13대 국회 첫 대정부질의 발언 중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정치인도 우리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우리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역사를 한번 만들어 보자."

-1995년 부산역 광장 유세에서 정치인들의 변절과 변신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4.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 해야 합니다.

-3당 합당 반대와 네 번의 낙선


1990년 1월 국회 개헌선을 확보한 거대여당 민자당이 출범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통일민주당의 합당결의 대회장에서 주먹을 쥐고 외쳤다.

"이견 있습니다. 반대 토론을 합시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당 내부에 민주적 절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보스가 결정하면 무엇이든 모두 우르르따라갔다.

"잘못된 정치풍토에 타협하지 않는 것이 저의 자부심이고 행복이다."

-2001년 대선후보 시절

1990년 3당 합당 때 김영삼 씨를 따라 여당에 갔다면 국회의원이야 세 번, 네 번하고, 장관도 일찍 했을지 모르겠지만, 끝내 3당 합당을 거부했다.

"할 말이 많은데 무슨 말씀부터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도 털고 일어나야지요.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부산에서 세 번째 출마한 2000년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홈페이지에 올린 글


5. 바보 노무현 '노풍'을 일으키다.

-노사모의 탄생과 국민참여경선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우리에게 역사의 과제가 남아 있는 한 노사모는 끝날 수 없습니다.

노사모는 노무현을 위한 조직이 아닙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만든 모임입니다. 한국 민주주의, 새로운 역사를 위한 모임입니다. 저도 임기를 마치면 노사모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친구로 돌아갈 것입니다."

-2007년 6월 16일 제8회 노사모 총회 축하 메시지 중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열심히 일하면 땀 흘린 만큼 잘 사는 사회, 바로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이제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나갑시다."

-2003년 1월 신년사 중


6. 위대한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어갑시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지금은 세상을 바꾸려면 위대한 지도자 한 사람이 나타는 게 아니라 국민들 마음 속에 새로운 시대를 향한 올비른 생각이 자리 잡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2004년 12월 6일 프랑스 동포 간담회에서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냐 합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굴절된 풍토는 청산되어야 합니다.원칙을 바로 세워 신뢰 사회를 만듭시다.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나아갑시다. 정직하고 성실한 대다수 국민이 보람을 느끼게 해드려야 합니다."

-제16대 대통령 취임사 중

"새 시대로 안내하는 다리가 되겠습니다.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구시대의 막내노릇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 시대의 첫차가 아니라 구시대의 막차가 될 수도 있습니다.구태와 잘못된 관행을 깨끗하게 청산하여 다음 후배들이 다시 진흙탕 길을 걷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2003년 11월 5일 원로지식인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7. 좀 더 멀리 봐 주십시오.

-혁신과 균형사회 그리고 외교


"신뢰가 먼저냐, 민주주의가 먼저냐? 신뢰가 먼저입니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신뢰가 있는 나라여야 합니다."

-2004년 5월 27일 연세대학교 초청 특강에서

"지역주의와의 싸움과 기회주의와의 싸움, 이것이 정치를 하는 동안 저에게 주어진 두 개의 큰 싸움입니다. 저는 원칙에는 매우 까다롭게 매달리지만 통합을 위해서라면 어떤 다른 가치도 희생할 수 있는 정치를 해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력 회고록 중

"위기가 생기면 국민들은 지도자 얼글을 쳐다봅니다.

위기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체로 저는 국방, 치안, 경제, 비전의 제시, 조정과 통합, 위기관리 등을 정치기나 지도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2003년 3월 7일 참여정부 국정토론회에서

"되도록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조용한 안보를위해 노력했습니다.

안보를 내세워 국민들을 겁주고 불안하게 하는 것은 독재 시대의 나쁜 버릇입니다."

-2007년 1월 23일 신년연설 중


8. 친구같은 대통령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저는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 것은 제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국민의 여망과 시대의 물결이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것은 우리 정치가 바뀌어야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신념에서였습니다."

-2003년 10월 13일 제243회 정기국회 시정연설에서


9.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10·4 선언


"대북 정책의 핵심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입니다. 통일은 그 다음입니다.

통일을 위해 평화를 깨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전쟁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안보입니다."

-2007년 신년연설 중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2007년 10월 2일 경기도 파주 군사분계선에서


10.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퇴임과 귀향 기리고 서거


"우리의 역사도 길게 보면 반드시 진보합니다.

진보의 가치는 연대라고 얘기하는데요, 그건 못난 사람들끼리 연대도 있지만

잘난 사란과 못난 사람의 연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진보의 가치를 그것이라 하는데, 저는 진보를 왕이 누리던 권리를 모든 시민이 함께 누리는 역사를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억압받던 사람이 자유를 누리게 되는 사회, 점차점차 그 자유가 모든 사람들에게 확산돼 나가는 사회의 변화를 저는 진보라고생각하거든요.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2008년 8월 9일 봉하마을 방문객들과 인사 말씀 중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009년 5월 23일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 전문


치열하게 살았으나

욕되게 살 수가 없어

벼랑 끝에 한 생애를 던진 저 한 점 꽃잎의 영혼을

하늘이여, 당신의 두 팔러 받아 안아주소서.

-시인 도종환 '벼랑에 지는 꽃'에서


#대통령노무현 #봉하마을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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