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괜찮아 노랭이들아
쪄서 파는 옥수수들 앞에 멈춰 설 때면
흑알이들과 노랭이들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나는 언제나 흑알이들을 데려왔다는 사실을.
가끔은 정말 까만색도 있지만 대부분 숭늉 밑바닥에 굴러다니는 누룽지 밥알처럼 흐리멍덩한 변조의 알들이 두서없이. 정말로 질서없이 박혀있는 흑알이.
예쁨은 가당치도 않고 특별히 맛있는 것도 아닌 흑알이.
생각해보면 노랭이들은 흠없이 노랗고자
정말 열심히 살지 않았을까.
한 점 흑알도 없으려면 대체 얼마나 열심히 산걸까.
나의 어처구니 없는 변명을 듣고나면
나도 밑도 끝도 없는 너따위에게 가지 않겠노라 노랭이들이 발끈할 지도 모르겠다.
유노낫띵, 피연희! 라며.
흑알이들은 내게 닭장 밖에서 풀뜯는 닭이다.
그렇다. 케이지프리 계란을 낳는 그 닭.
오메가뜨리를 먹었는지 그레인프리 사료를 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창살감옥에 갇혀서 알만 낳는 닭이 아니라 때가 되면 햇빛도 쏘이고 벌레도 잡고 흙도 밟는 닭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세상 모든 닭들이 그런 삶을 살려면 내가 얼마나 많은 케이지프리 계란을 먹어야 할까.
흑알이들은 웬지 그렇게 햇빛 속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내게 온 것 같다.
지금은 소금, 설탕 입고 뜨거운 김에 푹 익어서 누워있지만 한 때 노랭이 알알들로 줄맞추는 일에 연연하지 않고 메뚜기와 밀당도 하고 소나기 싸대기도 맞으며 씩씩대느라 치열하게 살아있었던.
그러느라 여기저기 거뭇거뭇해지고 몸매가 삐뚤빼뚤해지는 것도 개의치 않았던.
내게 흑알이들은 모든 불필요함을 당당하게 제끼고
가장 소중한 것을 누린 승자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그 어려운 것을 흑알이들은 해낸 것만 같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흑알이를 집어 든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모두가 지음받은대로 자유롭게 살날을 꿈꾸는
나를 기억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