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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김철기 Jul 05. 2021

필리핀 민도로섬에서 실시한 잎새뜨기 실전 테스트 (1)

제1차 잎새뜨기 생존수영 실전 테스트 현장 스케치

저는 2016년 1월 마지막 주에 저와 함께 잎새뜨기 생존수영을 개발한 한국안전수영협회 안치권 폴 수석코치와 인천 예람교회 선교팀과 함께 필리핀에서도 매년 20차례 이상 태풍이 지나가 익사사고가 빈번한 필리핀의 오지인 민도로섬을 방문했습니다.


이번 민도로섬 방문 주목적은 그 해 4월경에 개최될 대규모 청소년 선교 찬양대회에 참가하는 수백 명의 청소년들에게 잎새뜨기를 훈련시키는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고 새로 개발한 잎새뜨기 생존수영의 안전성과 실효성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밤 비행기 편으로 마닐라 국제공항에 새벽에 도착한 후 아침에 루손섬 남쪽 바탕가스 항구까지 자동차로 몇 시간 내려가서 페리를 타고 두어 시간을 바닷길을 이동해 민도로 섬 북부의 항구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시 자동차로 갈아타고 몇 시간 동안 포장길과 비포장길을 달린 끝에 목적지인 산타크루즈 해변에 도착해서 보니 인천공항을 전날 밤에 떠난 지 16시간이나 지난 그날 오후 3시이더군요. 저의 경우는 20년 가까이 필리핀에서 거주했었기에 낯설지 않은 느낌의 여행길이었습니다. 제가 마닐라에 살 때 틈틈이 바다수영을 즐겼기 때문에 오히려 민도로섬으로 가는 페리에서 제 가슴은 기대감으로 뛰었습니다.


이 번 민도로섬 방문은 현지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계신 최용기 선교사께서 주선하셨고 폴 코치, 잎새뜨기를 함께 훈련해 온 인천 예람교회 우영균 목사 겸 동료 코치와 네 명의 낭자 신도들이 봉사대원으로 참가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는 저희가 국내외 최초로 개발한 잎새뜨기 생존수영의 실효성을 실전 상황에서 테스트해보는 데 그 의미가 있었습니다.


실효성, 특히 안전성을 테스트해보지 않고 새로운 생존수영법을 보급하는 것은 어불성설,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마침 당시 일주일 가량 태풍이 지나가는 날씨였기에 "잎새뜨기를 실전 테스트하기엔 안성맞춤이다!"라고 내심 쾌재를 불렀답니다.


하지만 바다 한복판에 배를 타고 나가는 것이 매우 위험해서 현지 주민들도 일상 교통수단인 방카 배를 띄우지 못하여 섬들 간 왕래가 대부분 두절된 상태였습니다. 코치진의 입장에서는 심한 풍랑을 견뎌내야 하는 잎새뜨기 생존수영의 견고성과 안전성 등을 확인하기에 안성맞춤의 조건이라 좋아했으나 막상 주민들이 많이 모일 수 없어 흥행이 저조한 것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첫 실전 테스트를 하루 앞둔 1월 27일에  폴 코치의 감독하에 김철기, 우영균, 박혜미, 박주영 네 명의 대원들이 실전 테스트 현장인 민도로섬 산타크루즈 해변으로부터 약 1km 떨어진 깊은 바다에 부표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거기까지 수영과 잎새뜨기로 가서 점검하고 되돌아오기로 했습니다 이들 다섯 사람이 해안을 출발해서 목표지점을 향해 수영을 시작했으나 파도가 워낙 심해서 비교적 수영 경험이 많았던 저와 우영균 목사님 두 60대 시니어들은 파도와 조류가 워낙 세게 가로막는 바람에 겁을 집어 먹고 중도에서 포기하고 되돌아왔답니다.


하지만 오히려 바다수영이 처음인 박혜미, 정주영 두 10대 후반의 낭자 대원들은 폴 코치를 좇아 목적지인 부표까지 수영으로 무사히 도착해서 부표를 둘러싸고 서로 마주 보며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웃음도 잠시였고 심한 파도 속에서 역조류를 뚫고 되돌아오는 길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역조류를 뚫고 헤엄쳐 해안으로 돌아오는 동안 바다수영이 처음인 두 어린 낭자 대원들은 기진맥진한 상태에 빠져 잎새뜨기로 누워 쉬고 있다가 수영을 하다가 다시 잎새뜨기로 쉬기를 반복하면서 말 그대로 생환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합니다. 파고가 2 - 3 미터는 족히 되었으니 말입니다.


마침 어제저녁 SBS가 제작 방영한 '생사부 일체ㅡ구조 수영 편' 프로그램에서 둘 다 해병대 출신으로 구조 수영에 자신이 있는 이승기 군과 UFC 간판스타인 김동현 선수가 출연해 해경청 훈련 풀장에서 조파기로 파도를 만든 후 수영해서 각자 익수자가 있는 곳까지 구조 수영으로 접근해서 도구를 사용해 구조하는 실제 상황에 비슷한  보여준 유익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조파 레벨 3이 되자 각각 한 번씩 수영장을 세로로 수영해서 익수자에게 접근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날 민도로섬에서 일어난 일을 새삼 떠올려 봤습니다.


그날 제가 만일 되돌아오지 않고 고집스럽게 계속 수영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것이 100% 불가능한 일이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수영 중에 약효가 떨어지는 상황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꼼짝 못 하는 몸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평소에 종종 해본 잔잔한 바다에서 수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두 명의 건장한 해병대 출신 예능스타들이 몸으로 보여주었으니 말입니다.


당시 폴 코치가 한 말이 재미(?) 있더군요. 곁에서 수영을 하면서도 높은 파도에 가로막혀 서로 옆사람을 볼 수 없어서 본인이 높은 파도에서 내려다보니 한참 아래쪽에 정주영 대원이 기진맥진하여 반실신상태로 잎새뜨기 자세로 누워 있더라고요. 이에 깜짝 놀란 폴 코치가 "정주영, 뭐해? 일어나 계속 수영하지 않고!" 큰소리로 깨우니 정신을 번쩍 되찾아 얼마간을 수영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실신해서 잎새뜨기로 누워 쉬는 것을 반복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고 합니다.


만약 잎새뜨기 기술로 무장되지 않았다면 첫 바다수영을 나선 이들 낭자 대원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싶습니다. 그 반면에 그 험악한 파도에서 기진맥진하여 반실신한 상태의 낭자 대원까지 지켜 준 잎새뜨기의 탁월한 실효성이 극명하게 입증된 장면이기도 합니다.


한 시간 반이상 사투를 벌이고 되돌아오는 두 낭자 대원들과 안치권 코치를 초조와 불안감으로 기다리고 있던 제가 수영을 해서 맞이하러 나갔으며 우 목사님, 주민들이 해변에서 기다리다 안도의 환호성으로 맞이했습니다. 먼저 들어오는 박혜미 대원에게 제가 헤엄쳐서 다가가 물었습니다. "혜미, 고생 많이 했다. 어땠어?" 했더니 "저는 괜찮아요"라는 한마디가 고작 그녀의 대답이었습니다. 역시 10대의 젊음과 투지가 부러웠습니다.


이 두 낭자 대원들의 엄청난 투혼과 용기에 감명을 받아 마지막 날까지 주저하고 있었던 주민들이 그다음 날 실시할 실전 생존술 테스트에 하나둘씩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원한 현지 주민들 중에는 임신 중인 아주머니와 왕년에 국가대표 달리기 선수였다는 70대 할머니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https://youtu.be/XAXJYooPVFc

 다음날 오후에 소형 방카 배 양쪽에 나이론 줄을 한가닥씩 매달고 그 줄을 잡고 잎새뜨기 자세로 참가자들을 천천히 끌고 목표지점인 바다 한복판에서 설치된 부표에 접근해서 보트를 정지시켰습니다. 가서 보니 잎새뜨기에 관한 사전 오리엔테이션을 받지 못한 채 자원한 70대 할머니가 마치 왕년에 달리기 하듯이 오면서 계속해서 다리를 움직인 탓에 체력이 고갈되어 도착한 배 위에서 구토를 시작해서 그 할머니와 임산부 한 명을 예방차원에서 쉬게 하고 나머지 10명 남짓한 인원이 실전 테스트에 참여했습니다.


먼저 저와 우 목사님을 비롯한 여섯 명의 한국 대원들이 폴 코치의 지시에 따라 잎새뜨기 시범을 보이자 자원한 주민들도 뒤따라서 참여하여 그룹 잎새뜨기 대형을 갖추고 높은 파도와 빠른 조류를 타고 잎새뜨기 실전 테스트에 돌입했습니다.


저는 험악한 파도에 처음으로 몸을 뉘었을 때의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 저는 "생명살리기를 위해 지금부터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한다!" "살신성인하자!"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처음으로 깊은 바다에서 실시한 실전 테스트에 대한 공포감을 잊게 하기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노래가 없겠냐고 폴 코치가 물었고 제가 ‘Amazing grace’를 선창하자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서 부르고 또 반복해서 불렀다. 마치 그것이 잎새뜨기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는 서곡인 것처럼…

민도로섬 1차실전 잎새뜨기 생존수영 테스트 하이라이트

약 30분간에 걸친 실전 테스트를 무사히 마치고 배에 묶인 나이론 줄 두 개에 의지한 채 잎새뜨기로 누운 채 되돌아오는 길은 실로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높아진 파도와 역조류 때문이었다. 현장에 갈 때보다 두어 배 더 긴 시간을 파도와 씨름을 해야 했고 짠 바닷물을 먹어가며 귀환하는 데 벌써 석양의 노을빛에 물든 바다가 자못 낭만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어렵사리 다들 무사히 해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며 기다리던 주민들로부터 큰 환호와 박수로 환영을 받았다.

이렇게 생명을 걸고 맨몸으로 실시한 실전 테스트는 큰 성공작으로 끝났고 몇 달 뒤에 예정된 현지 청소년들 수백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잎새뜨기 교육행사를 개최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닐라에 돌아온 저는 며칠간 더 묵으면서 마닐라 소재 CNN 마닐라 지사 등에 4월 초순에 개최할 대규모 잎새뜨기 교육행사를 취재하러 오도록 초청장을 보냈으나 워낙 오지인지라 끝내 취재하러 오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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