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롱불 촌놈의 기상천외한 명문대 입학기
"철기야, 혹시 대학에 한번 가 보지 않겠니?"
저는 사람들에게 "그 나이에 첫사랑에 빠지면 무엇이든 못할 게 무엇이 있겠냐고" 얘기하곤 한다.
3학년이 돼서 제게 인생 최대의 전기가 주어졌다. 아홉 살짜리 소년이 세계사와 세계 명작을 마음껏 섭렵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내가 360명 가운데 맨 꼴찌로 입학한 것이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상기하면 소름이 돋곤 한다.
가정불화 속에서 사춘기를 지나면서 나는 심한 열등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렇게 맨 꼴찌로 중학교에 입학해 우울한 중고등학교 생활을 하던 제 인생 진로를 180도 확 바꿀 행운이 제가 고3이 되던 해에 찾아왔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제가 당시에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자랑스러운 '호롱불 입시생'이었던 것이다.
이때 제 모습을 기억하는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끈기 지존'이라고 부른다.
아뿔싸! 이를 어쩌나. 작문은 한자도 손대지 못했는데…
간절히 두드리니 문이 활짝 열렸다. 시골 촌놈의 서울 유학을 발판 삼아 저는 후일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에 진학하였고 한국은행에 입행한 후 세계적인 톱 비즈니스 스쿨인 유펜의 와튼스쿨 유학을 거쳐 꿈의 직장인 국제기구 아시아개발은행에 진출해 전문가로서 활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삶은 결국 '선택과 집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