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리학과 학생 Mar 22. 2019

상처

마음에 상처와 감정 컨트롤에 중요성

"상처"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그 상처는 마음에 남는다. 상처 강도에 따라 더욱 깊어지고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을 새긴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어느 순간 다시 생각나게 되고 또 우리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할 때도 많다. 상처는 깊이에 따라 아픔에 차이가 있지만 말 그대로 상처는 누구에게나 아프다. 절대로 잊지 못하고 머릿속에 반복되면서까지 마음에 남아 있는 상처는 트라우마로 남게 될 수도 있다.


나도 과거에는 철없는 시절 누군가를 상처를 주었고 또한 누군가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상처란 아픔이란 것을 알게 되고 잊을 수 없는 상처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피부가 재생되어도 흉터가 남는 것처럼 말이다. 만일 내가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기억 때문에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우울해져 무기력해질 수도 있고 눈물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상처를 과거에 묻어 둘 수 있다. 잊을 수 없는 상처는 잊을 수 없다 단지 내 마음에 묻어 두는 것뿐.


트라우마를 겪은 환자의 치료법에 첫 단계는 트라우마를 직면하는 것이다. 공포를 직면하는 것은 사실 두려운 부분이다. 겪어보지 못한 것과 겪었던 것을 생각하는 것은 차원이 틀린 것처럼 말이다. 가난했던 사람은 그 가난을 두려워하고 가족을 잃은 한 사람은 누군가를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 마치 아이가 사탕을 뺏겨서 다음번에는 꼭 쥐고 있듯이 마음으로 받은 상처는 자국으로 남아 온몸이 기억한다. 하지만 감정은 이것과 같이 되새김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20세기 때 부정적인 감정(증오, 분노, 슬픔 등)은 되새김과 함께 행동으로 몸에 배출시키는 것이 심리 안정에 도움된다고 생각했었다. 분노할 때는 베개에 주먹을 휘두르듯 어떠한 방법으로든 표출시켜 없애버린다는 이론이 존재했다. 하지만 연구에 의하면 그 부정적인 감정이 강도가 더욱 높아져 제거하기는커녕 증폭시킨다는 결과가 있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해 화를 표출한다면, 표출하기 전에 분노보다 강도가 더 높아졌다. 쉽게 말해 스트레스받 계속 스트레스를 생각하고 있다면 더욱 스트레스가 나는 것처럼 감정에 대한 되새김은 그저 증폭일 뿐이다.


그러면 반대로 참는 방법에 대해 이론을 새웠다. 우리나라에는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라는 속담도 있다. 국어사전에는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참으면 무슨 일이든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라고 한다. 우리는 이 속담으로 "참아야 한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지원자를 모집해 두 그룹으로 나눠 한 영상 보여줌으로 연구가 시작된다. 한 그룹은 어떤 영상이든 무조건 포커페이스 유지, 즉 감정을 숨기고 아무것도 표출하지 않은 채 영상을 감상하는 것이고 다른 그룹은 어떤 영상이든 표현에 자율성을 주었다. 그 영상은 동물을 실험하기 위한 학대 영상과 잔인한 장면들을 담고 있었다. 첫 번째 그룹은 표현을 감추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했고 두 번째 그룹은 참지 못하여 눈물과 오열과 함께 영상이 끝났다. 결과는 두 그룹과 일치하지 않았다. 표현을 한 그룹은 호르문 분비가 슬픔과 잘 연결되어 올바르게 작용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그룹은 호르문 분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영상이 끝나고 더욱 심한 슬픔에 잠기게 됐다, 즉,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면 깊숙이 남아있단 뜻이다.


현대 심리학은 말한다 감정은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솔직히 두 실험을 바탕으로 얘기하면 결국 표현도 하지 말고 참지도 말라는 이야기가 돼버린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컨트롤이다. 상처를 참으면 마음 안에 자리를 잡고 상처를 표출하면 증폭이 되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 중간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그 지점이 감정을 컨트롤하는 곳이다 그리고 컨트롤이란 나를 돌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툼이 있을 때 누군가를 상처 주지 않기 위한 선택과 나를 지킬 수 있는 선택을 동시에 해야 하는데 그때 나는 이 두 가지를 이룰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상처 주지 않는 선택은 나 자신만 상처 받게 되고 나만 지키는 선택은 결국 누군가에 상처가 되어 죄책감이라는 아픔이 되돌아온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심리학에서도 컨트롤이 필요할 뿐 명확한 방법을 제시해 주진 않는다. 그 이유는 감정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죄책감으로 인해 다툼에 대해 사과를 할 때 상대방이 상처를 받지 않았다고 하거나 잊어버렸다고 말할 때가 있지 않은가?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이에 상처가 어른에게 상처가 될 수 없듯이 감정은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에도 상처를 받고 어떤 순간에도 상처를 잊지 못할 수도 있다. 필자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깊이 묻어 두었던 상처를 치료했다. 이처럼 나 자신과 대화하고 그로 인한 제어는 나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이다.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은 동의할 수 없다 돌봄 받지 못한 상처는 방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벼운 상처를 얘기할 때만 가능할 뿐이지 큰 상처는 치료하지 않으면 더 큰 병을 만든다. 그 병은 나를 더욱 아프게 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망가지게 한다. 그러므로 감정은 나의 것임으로 나는 항상 나 자신을 돌보고 지켜줘야 한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수면의 중요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