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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아쑤아 Oct 26. 2022

멀리 가는 게 좋을까?

가족 모두가 즐거운 휴일 보내기

"아빠, 언제 도착해?"

아이들과 어디라도 갈라치면 도착할 때까지 수도 없이 받는 질문이다. 처음에는 내비게이션에 도착 시간을 보고 정확하게 알려 주었지만, 자꾸 반복되니 짜증이 나서

"그만 묻고 한숨 자!"

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다시는 너희들 데리고 어디 안 간다!" 

는 협박을 하기도 한다.


도착해서 돌아다니다 보면 물론 좋을 때도 많지만 가끔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나.. 싶을 때도 많다. 몇 주 전 가족 행사로 경주에 갔다. 첨성대와 대릉원을 구경하는데 5학년인 딸은 요즘 사회시간에 역사를 배운다고 조금 관심을 보였지만 두 아들은 덥다고 짜증만 냈다. 아무리 신라시대 이야기를 해주고, 김유신 책을 들먹거려봐도 아들들에게는 덥고 걷기 힘들 뿐이었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은 어쩌면 부모의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그렇다고 매주 학교 운동장만 가서 공만 차는 게 좋은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남편은 이런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빠도 어릴 때 이런데 오면 싫었어. 재미도 없고, 이해도 안 되고.. 너희가 재미없는 것도 당연하지. 나중에 너희가 원할 때 다시 와서 봐. 그러면 훨씬 재미있을 거야." 

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주를 다녀온 다음 주말, 우리는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점심 먹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 아들은 처음에는 걷는 게 싫다고 했지만 그래도 함께 걸으며 다섯이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하늘도 보고, 꽃 이름 검색도 해보고, 아빠랑 잡기 놀이도 하고, 놀이터에서 뛰어 놀기도 하니 유명한 관광지 찾아간 것보다 즐거웠다. 무엇보다 다섯 명 모두 만족한 시간이었다.


가끔은 아이들과 여행도 필요하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낯선 곳에서 부모의 행동을 보며 사회성도 발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의무감 때문에 매 주말마다 어디라도 가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는 게 좋을 것 같다. 특히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의 경우에는 집 근처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좋고, 부모도 편안하게 주말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집 앞 놀이터도 호기심 천국이고, 익숙한 곳에서 아빠와 신나게 노는 경험이 훨씬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어릴 때 갔던 비싼 워터파크나 아쿠아리움 등이 기억나느냐고 물으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4살 때 간 곳도 기억하지 못했다. 첫 아이가 어릴 때는 더 많은 것을 경험시켜주겠다는 욕심으로 더 많이 다녔는데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그냥 편하게 놀 것을 그랬다고 생각했다. 육아서를 읽으면 이런 조언을 전문가들이 많이 하지만 나도 욕심 많던 초보 엄마라서 육아서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된 지금도 매주 나들이를 가면 힘들어한다. 그 좋아하는 할머니 집도 2주 연속 다녀오니 다음 주는 집에서 좀 쉬자고 먼저 이야기한다. 나와 남편은 낯선 환경을 만나면 긴장을 하는 편이고, 사람 많은 곳에 다녀오면 지치는 성향이다. 아마 아이들도 우리와 비슷한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남편을 볶아댔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우리의 목표는 가족이 함께 즐겁고 추억을 만드는 것이고, 집 뒷산에서도 즐거운 추억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우리 부부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도무지 어디를 가지 않으니.. 우리 같은 성향의 부모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육아에는 정말 균형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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