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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y 06. 2022

시간을 잡고 싶다

2018년 후에 세종학당 2학기

아침 7시 30분, 학당에 출근하니 린짱 선생님이 아침을 귀찮아서 대충 챙겨 먹는 나와 김 선생님을 위해 베트남 음식을 싸 왔다. 어떨 때는 베트남 전통 음식 반쯩(Banh Chung)을 가져오기도 하고, 식당에서 쌀국수를 포장해 오기도 하고, 직접 만든 닭고기 수프를 가지고 오기도 한다. 고맙기도 하지만 미안하기도 해서 매번 이렇게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착한 린짱 선생님은 항상 이렇게 우릴 챙겨 준다. 우리보다 나이도 훨씬 어린데 말이다.


오전 일과가 끝나고 오후가 되면 우리는 음료수를 배달해서 먹는다. 베트남의 스타벅스라고 불리는 하이랜드 커피, 공차, 소금 커피 중 하나를 시키는데, 가장 많이 주문한 건 소금 커피이다. 소금 커피는 여행자들은 잘 모르는데 후에 사람들한테는 엄청나게 유명하다. 이름은 소금 커피지만 짠맛은 잘 안 느껴진다. 소금을 살짝 섞은 연유에 커피를 내려 먹는 것인데, 연유와 커피를 섞기 전에 윗부분만 먹어 보면 아주 은은하게 짠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소금 커피를 아주 좋아했고, 우리는 소금 커피를 시키면 한 사람 당 두 개씩 시켰다. 일하는 중에 누리는 소금 커피 시간은 정말 꿀맛이었다. 커피가 맛있기도 했지만, 같이 즐기는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금 커피. 배달을 시켜 먹으면 저렇게 온다.


우리 학당은 분위기가 정말 화목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만큼 행운이 있을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해도 출근은 재미가 없는데,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해서 출근하는 것이 좋을 정도였다. 그래서 시간이 가는 게 너무 아쉬웠다. 내가 후에에 있을 수 있는 시간도 겨우 6개월밖에 안 남았다. 동료들도 학생들도 수업하는 것도 좋은데, 좋은 만큼 시간은 빨리 간다. 흐르는 시간을 잡고 싶을 정도였다.


항상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빨리 귀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물론 많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런 것조차 추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몽골에서도 힘든 일이 많았고 빨리 귀국하고 싶어 했지만, 귀국하고 나서 몽골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때 현실을 더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을 많이 후회하게 되었다. 후에에서는 그런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후에에 다낭에만 있던 콩카페가 들어왔다. 작년에 베트남에 놀러 온 언니와 동생과 다낭에 갔을 때 콩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미어터질 정도로 많아서 간신히 자리를 잡고 그나마도 코코넛 스무디를 후루룩 마시고 빨리 자리를 떴었다. 사람이 많아서 불편했지만 코코넛 스무디는 눈이 확 떠질 정도로 맛있었다. 다낭에서 그렇게 힘들게 먹었던 코코넛 스무디를 점심시간에 여유를 즐기며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콩카페에 가니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우리 학당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이제는 이렇게 학생을 만나는 게 익숙하다. 술집에서도 식당에서도 은행에서도, 거기에서 일하는 학당 학생을 만났었다. 그리고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마트에서 장 보다가, 그냥 길 가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학당 학생들의 인사를 받는 일도 흔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학생을 만나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좀 즐기게 되었다. 마치 유명인사가 된 것 같은 착각도 들고 말이다.


콩카페 코코넛 초코 스무디


콩카페에 들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니 레 러이 거리에서 바라보는 흐엉 강 경치가 아주 예뻤다. 노을이 마치 날개를 펼친 듯한 모습이었다.



국학 광장에서 작은 축제를 하고 있었다. 광장에 가판대가 세워져 아마 수공예인 듯한 물건을 팔고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놀고 있었다. 중앙에서는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길거리 공연인 듯했다. 기타를 치며 레몬 트리를 부르고 있었는데, 레몬 트리가 광장이 있는 레 러이 거리에 모두 울려 퍼졌다. 역시 명곡은 국적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좋아하나 보다. 나는 발길을 멈추고 광장에 우두커니 서서 레몬 트리를 들었다. 옛날부터 비틀즈, 카펜터, 마이클잭슨 등이 부른 올드 팝송을 좋아했다. 레몬 트리도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듣던 팝송이었다. 좋아하는 팝송을 좋아하는 곳에서 들으니 더 좋았다.



후에에 온 지 1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그동안 후에는 정말 많이 변하고 있었다. 명칭은 도시지만 사실은 시골에 가까운 후에에 대형 쇼핑몰인 빈컴센터가 들어왔고, 흐엉 강변에는 삼성에서 지어 준 수상 산책길(?)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비록 택시는 안 되고 오토바이만 되었지만 그랩(Grap)이 들어왔다. 소문으로는 한국 회사들도 후에에 점점 더 많이 들어오는 중이라고 한다. 이곳은 앞으로 더 더 발전하겠지. 후에 세종학당도 우리가 떠나고 다른 분이 들어오고 많이 변하겠지. 변화는 당연한 일이고 발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섭섭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지 않게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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