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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Apr 25. 2022

에어컨 님, 아프지 마세요.

2018년 후에 세종학당 2학기

2주간의 짧은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2학기부터는 학당장님도 바뀌고 짱 선생님이 운영요원으로 새로 합류하셔서 바뀐 게 많았다. 나와 늉 선생님, 김 선생님은 새로 오신 짱 선생님을 열렬히 환영했다.


"짱 씨, 아니, 이제부터는 짱 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앞으로 많이 부탁해요!"

"아니 선생님 저 편하게 불러 주세요. 선생님 아니에요."

"이제 학생이 아니라 같은 동료가 됐으니까 선생님이라고 불러야죠~. 늉 선생님한테도 선생님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냥 반말하셔도 돼요. 저 불편해요."


불편해도 어쩔 수 없다. 짱 선생님이 아무리 학생 출신이라고 해도 이제는 동료인데 예전처럼 '~씨'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작년 10월 늉 선생님이 처음 오셨을 때도 나와 김 선생님이 자기를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거에 부담을 느끼고 편하게 불러 달라고 했었지만 우리는 꿋꿋이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늉 선생님과 짱 선생님 모두 한참 동생 뻘인 데다가 아직 교사도 아니었기에 그런 호칭에 부담스러워했지만 점점 적응했다.


짱 선생님이 오고 나서 사무실 분위기는 아주 좋아졌다. 아침을 대충 먹는다는 우리를 위해 쌀국수를 포장해 와서 주고 베트남 음식도 계속 가져왔는데, 정말 다 맛있었다. 맛있는 건 둘째고 챙겨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업무 면에서도 한국어가 아직 서툴고 업무에도 익숙하지 않아 어려운 점이 많을 텐데도 걱정이 안 될 만큼 일도 열심히, 성실하게 잘했다. 짱 선생님이 오기 전까지는 늉 선생님이 회계 업무와 베트남어로 해야 하는 업무를, 파견 교원들은 학사와 관련된 행정 업무를 담당했었는데 이제는 정말 수업과 수업 준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하고 사무실 분위기도 훨씬 자유로워져서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즐기면서 일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몸소 체감했다. 그런데 우리나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았는지 하늘이 시련을 주었다.


"에어컨이 왜 갑자기 안 나오죠?"

"저도 모르겠어요. 한번 알아볼게요."


에어컨이 안 나왔다. 그것도 한여름인 6월 중순에 말이다. 베트남에서 한여름에 에어컨이 없는 하루를 보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미 집에서 겪어 봐서 안다. 평소에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지만, 이럴 때면 에어컨은 '에어컨 님'이 되신다. 정전처럼 일시적인 현상이겠지, 금방 다시 나올 거야 생각했었는데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며칠이 지나도 에어컨 님은 차도를 보이지 못하셨다.


"알아봤는데 우리만 그런 거 아니고 이 건물 전체 에어컨이 안 된대요. 사람을 불러 볼게요."


세종학당 건물은 후에 대학교 국제교류센터 건물 안에 있다. 국제교류센터 에어컨 전부가 이상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개별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급한 대로 기술자를 불러서 우리 사무실과 교실 에어컨을 일단 봐 달라고 했다. 기술자는 일부 에어컨만 고칠 수가 없고 건물 전체 에어컨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다. 중앙 에어컨(?)의 문제라나. 운영요원 선생님들은 계속 후에 대학교에 요청을 했지만 왜 그런 건지(아마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예산 상의 문제로 지체된 것 같았다) 후에 대학교는 에어컨 수리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업할 때는 힘들어도 참을 만했다는 거였다. 수업은 아침 9~11시와 저녁 5시 반~7시 반까지라서 제일 더울 때를 피했고, 아침 수업은 사무실 양 옆에 있는 교실에서 하는데 바깥 창문이 해가 뜨는 방향과 정반대에 있다. 저녁 수업은 1층부터 4층까지 교실 5개를 쓰는데 저녁이라 해도 없고 기온도 좀 낮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참을 만했다. 문제는 수업을 안 하고 사무실 근무만 하는 한낮이었다. 점심시간이 1시 반까지인데, 이때부터 저녁 수업 전까지가 너무너무 힘들었다. 해가 지는 방향에 창문이 있고 앞에 가리는 건물도 없어 햇빛을 정면으로 받는데, 설상가상으로 천장에 달린 선풍기 두 대 중 한 대가 작년부터 고장이었다. 천장 선풍기 한 대와 그냥 선풍기 한 대, 손선풍기만으로 33도가 넘고 사우나같이 습기 찬 사무실을 견딜 수는 없었다. 더위도 더위지만 흐르는 땀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옷이 땀으로 젖고, 책과 종이도 땀으로 젖었다.


"선생님들, 우리 나가요!" 

"네! 더 이상 안 되겠어요." 

"카페에서 가서 일해요!" 

"바로 옆에 에어컨 잘 나오고 일하기 편한 카페 있어요. 거기로 가요." 


업무 시간에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원칙이었고 일할 때 필요한 자료도 전화도 사무실에 있었기에 밖에서 일하는 게 편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카페로 갔다. 우리 세종학당 바로 뒤에 있는 카페였는데 1층은 자전거 전시 및 판매를 하는 곳이고 2층이 카페였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됐고 인테리어도 잘 되어 있는 데다가 자리도 편해서 내가 점심 먹고 자주 가는 곳이었다. 우리는 단체석에 앉아 음료를 시키고 일을 시작했다. 천국이었다. 찜통 속에서 벗어난 것도 좋았고, 분명히 일을 하고 있는데 노는 느낌이 드는 것도 좋았다. 합법적 땡땡이(?)를 치는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사무실에서보다 집중이 더 잘 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카페에서만 일할 수는 없었다. 한국과 연락할 수 있는 인터넷 전화도 업무 자료도 다 사무실에 있었고 말이다. 결국 우린 냉방기를 사기로 했다. 냉방기는 기능은 선풍기인데, 안에 얼음이나 물을 넣어 더 시원한 바람이 불게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기계였는데 베트남에서는 선풍기만큼이나 대중적인 것 같았다. 짱 선생님이 나보고 냉방기를 사러 같이 가자고 해서 같이 갔는데, 정말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우리는 가격과 크기가 괜찮은 냉방기를 고르고 사진을 찍어 사무실의 늉 선생님과 김 선생님께 보냈고, 바로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한시라도 빨리 찜질방 사무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냉방기를 사무실에 놓고, 기대를 가득 안고 얼음과 물을 넣고 전원을 켰다.


음... 생각보다 안 시원했다. 사무실의 더위를 물리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선풍기보다는 시원한 건 확실한데 기대보다 에어컨보다는 약했다. 그나마 얼음을 넣어야 좀 시원한 바람이 불었지 물만 넣으면 그다지 시원하지 않았고, 얼음도 금방 녹아버리니 잠시 동안만 시원했다. 하지만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사무실에서 여전히 땀을 흘리며 일을 해야 해도, 냉방기를 사기 전처럼 땀 때문에 일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냉방기는 4층에서 수업을 할 때 4층 교실로 가져가야 했다. 다른 교실보다 4층이 훨씬 더웠기 때문이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부탁해서 같이 냉방기를 옮기고, 끝나면 다시 옮기고... 안 그래도 수업을 할 때마다 빔 프로젝터+교재와 출석부 등 수업 자료+ 노트북을 들고 다녀야 해서 짐이 많았는데 냉방기까지, 4층 수업은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힘들었지만 짜증은 나지 않았다. 나는 냉방기를 옮기게 해서 좀 미안했는데,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일찍 와서 냉방기를 옮기며 재미있어했다. 학생들이 웃으니 나도 농담하면서 서로 그 상황을 즐겼다. 수업이 끝나고도 우리는 힘들어 죽겠다고 하면서 서로 깔깔 웃었다.


에어컨은 고장 난 지 3주가 조금 넘었을 때 다시 돌아왔다. 드디어 후에 대학교에서 중앙 에어컨을 고친 것이다. 에어컨 바람을 사무실에서 다시 맞았을 때 기분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 네 명은 박수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나는 에어컨에게 속으로 빌었다. '건강하셔야 해요. 당신의 소중함을 절대 잊지 않을게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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