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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r 10. 2021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는 것은

2. 세종학당 파견 교원이 되기 전까지

교수님처럼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할 겁니다.


파견된 지 약 7개월 후, 3학년 말하기 수업이 끝난 후에 학생들이 갑자기 숨겨 놓았던 케이크와 편지를 나에게 주었다. 그날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편지를 받고 집에 와서 읽어 보았다. 한국어로 스승의 날을 축하하고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쓴 편지들 속에 몽골어로만 쓴 편지가 있었다.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에게 편지 내용을 물어봤지만 웃으며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 편지를 다른 편지와 함께 소중히 보관하고만 있었다. 


스승의 날에 받은 익명의 편지


몇 달 후, 몽골어를 아주 잘하는 동료 코이카 단원에게 편지를 보여 주며 무슨 내용인지 물었다. 동료 코이카 단원은 그 편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고 했다.


“항상 저희를 도와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랑스럽고 교수님처럼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할 겁니다. 사랑합니다”


편지는 익명이었지만 누가 쓴 건지는 짐작이 갔다. 3학년은 한국어를 아주 기본적인 의사소통 정도만 할 줄 아는 학생과 토픽 중급 수준 학생, 그리고 토픽 6급에 합격하고 통번역 일을 하는 고급 수준 학생이 같이 수업을 들었다. 분반이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라 하는 수 없이 중급 수준에 맞춰서 수업을 하고, 말하기 연습하는 시간에는 초급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과제를 따로 주었다. 그리고 초급 학생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초급 특별 수업을 했다. 중급 수준 이상의 학생들은 자기 이름을 밝히고 한국어로 편지를 줬으니 아마 초급 특별 수업을 들은 학생 중 한 명이 편지를 썼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부족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좋은 선생님이라니, 그리고 나처럼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학생이 있다니, 이건 교사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 아닌가?


누군가를 롤모델로만 삼을 줄 알았지, 내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학생들에 대한 나의 진심과 노력을 그들이 알아준 것 같아 고마웠고, 나와 같은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학생을 생각해서라도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힘이 났다.


코이카에 지원했을 때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서 지원한 것이기 때문에 귀국하면 NGO단체에 취업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날 학생들의 편지를 받고 한국어 교사로서의 보람을 느끼고 다시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제대로 된 한국어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남은 파견 기간을 ‘버틴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나와 함께 하는 2년이 누군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데, 그 시간을 왜 경력 때문에 버티는 시간 따위로 생각하나? 그리고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고 나니 초보 교사로서의 부담도 덜어졌고, 내가 겪는 어려움도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또 다른 가족, 힘들거나 기쁜 일을 함께 나눠 주는 코이카 동기들이 있었고 나를 믿고 따라와 주는 학생들이 있었으니까. 남은 파견 기간은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것 또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지냈고, 언제나 그랬듯 최선을 다했다.


(좌)열심히 공부하는 모비스 1학년 학생들 / (우) 정규 수업이 끝나고 남아서 공부하는 3학년 특별반 학생들


내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된다는 것은 부담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건 아주 좋은 부담이다. 나를 찌르는 부담이 아니라 위로 밀어주는 부담이기 때문이다. 더 발전할 수 있게 해 주고, 혹시나 태도가 나쁘게 변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게 해 준다.


누군가 나에게 2년간 몽골에서 보낸 시간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하면 나는 할 수 없다. ‘행복, 실망, 보람, 후회, 좌절, 미안, 추억’. 여러 단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동기들과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행복했고, 내가 처음 생각한 봉사활동과 달라서 실망했고,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이 성장하고 학생들이 나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을 보며 보람찼고, 더 잘 가르치고 지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도 들었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좌절했고, 부족한 지식과 실력으로 더 좋은 수업을 하지 못해서 학생들에게 미안했고, 아직도 꿈에 가끔 나올 만큼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쌓았기 때문에. 하지만 한 문장으로 말하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겨울이 추운 만큼 힘들었지만 여름이 아름다운 만큼 축복 같았던 시간
   

아름다운 몽골, 그리운 몽골


2016년 11월 코이카 봉사단원 임기가 끝나서 귀국을 앞둘 때 학생들과 송별회를 했다. 학생들은 자기가 직접 그린 그림, 몽골 전통 기념품, 편지 등을 선물했다. 모든 선물이 고마웠지만, 그중 가장 의미 있었던 선물이 있었다. 엥흐툽신이라는 학생이 준 편지이다. 엥흐툽신은 나와 찍은 사진을 편지지에 한 장 한 장 붙여서 앨범처럼 만들고 편지를 썼다. 그리고 나의 코이카 단원 생활을 이끌어 준 '교수님 처럼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말을 여기에서 또 읽을 수 있었다.


엥흐툽신의 편지. 얼굴은 마음에 안 들어서 가렸다.


엥흐툽신은 누구보다도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했지만 한국어 실력이 다른 초급 수준 학생에 비해서도 많이 떨어지는 학생이어서 수업에 전혀 못 따라오는 학생이었다. 학기 초반에 엥흐툽신의 표정은 수업 때마다 어두웠고 나는 그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수업 시간에 엥흐툽신도 참여할 수 있게 전략을 짜서 수업했다. 엥흐툽신에게 쉬운 질문을 하거나 수업 중 활동으로 쉬운 과제를 주고, 짝 대화를 할 때 한국어를 아주 잘하는 친구와 붙여 줘서 그 친구가 엥흐툽신을 도와줄 수 있게 했다. 초급 특별 수업 또한 사실 엥흐툽신을 위해 만든 것인데, 이 특별 수업을 들은 학생은 5명이었지만 학기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지각 결석을 하지 않고 수업에 참여한 학생은 엥흐툽신밖에 없었다. 엥흐툽신은 나와 같이 수업하면서 한국어 공부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에게 한 사람을 눈에 띄게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엥흐툽신은 알려줬다. 


엥흐툽신 외에도 기억에 남는 학생은 많이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몽골에서 가르친 다른 학생들의 이야기도 브런치를 통해 쓰고 싶다. 

고마운 모비스 학생들


왼쪽 위부터 한국어 올림피아드 말하기 대회, 한국어 연극 대회, 올림피아드에서 글짓기 부문 동상을 받은 앙흐바야르, 퀴즈 온 코리아 예선대회


2016년 9월 30일, 코이카 활동 종료 약 두 달 전에 ‘2017년 세종학당 상반기 파견 교원 모집’ 공고가 떴다. 귀국하고 나서도 한국어교육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자, 세종학당 파견 교원이 되겠다는 꿈이 다시 마음속에서 피어올랐기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지원했다. 귀국하기 전날 ‘서류전형 합격’을 확인했고, 귀국하자마자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면접 준비로 정신없었다. 머리카락까지 느껴지는 긴장 속에 면접이 끝나고 약 일주일 후, 나는 ‘최종 합격’ 결과를 보고 가족들과 얼싸안고 좋아했다. 2013년에 세운 세종학당재단 파견 교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4년 후에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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