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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r 26. 2021

흥미로운 몽골의 신화

몽골. 2016년 9월 기획 원고

몽골은 옛날부터 여러 부족들이 존재했으며, 몽골이라는 이름 아래 연맹국가 형태를 유지해왔습니다. 또, 자연물을 숭상하는 토테미즘(totemism)과 신적인 존재를 믿는 샤머니즘(shamanism), 동식물을 숭배하는 애니미즘(animism) 신앙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몽골에는 아주 많은 신화와 전설이 있습니다.


몽골 민족의 여러 신화를 분류해보면, 창세 신화 · 천체 기원 신화 · 씨족과 부족 기원신화 · 신앙과 관련된 신화 · 동물 신화 · 식물과 성수 신화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많은 신화 중에서 창세 신화와 천체 기원 신화에 대해 소개하면서 몽골의 문화를 설명하고, 또 한국의 신화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1. 지구가 처음 생겨난 이야기에 대한 신화


지구는 처음에 땅과 흙이 없고 물만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르마스트 하느님(хурмаст тэнгэр)이 갈빙가(галбингаа)라는 새를 지구로 보냈습니다. 그 새는 수명이 3만 년이었는데, 만 세가 되면 알을 품는 새였습니다. 갈빙가는 알을 낳을 마른 땅을 찾기 위해  계속 날아다녔지만, 마른 땅을 찾지 못하고 계속 물만 나오자 자신의 날개깃을 뽑아 물 위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았습니다. 이 둥지 위에 미세한 먼지가 계속 쌓여 땅이 되었고, 세 번째 만 년에 낳은 알에서는 여러 가지 동물들이 생겨났고 마지막에 인간이 만들어 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땅과 물이 있는 지구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새의 수명이 3만 년인 이유는 몽골에서 3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와 관련이 있습니다. 몽골에서 숫자 3은 과거 · 현재 · 미래, 아버지 · 어머니 · 자식, 뿌리 · 줄기 · 싹이라는 생명과 시간의 영속성을 상징하고, 해 · 달 · 지구라는 인간의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3만이란, 완성을 위한 오랜 기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석가모니(шигмүни)와 매다르(майдар), 에첵그 보르항(эцэг бурхан)의 이야기


아주 오랜 옛날에는 지구가 없었으며, 어딜 가나 물만 있었습니다. 석가모니와 매다르, 에첵그 보르항은 함께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물 가운데로 가고 있는데, 안가트(ангат)라는 새가 12마리의 새끼를 데리고 물 위로 떠가고 있었습니다.


세 신들은 안가트에게 물 밑으로 들어가 검은 흙과 붉은 흙, 모래를 가지고 오라고 명령했고. 안가트는 신들의 명령대로 흙과 모래를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세 신들은 그 흙과 모래를 물 위에 뿌려 세상을 만들고 식물이 자라게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인간을 만들었는데, 인간의 몸은 붉은 진흙으로, 뼈는 흰 돌로, 피는 물로 만들었습니다.


신들은 이렇게 남자와 여자를 만들고 나서 인간들을 누가 돌보며 살아갈 지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세 신은 오랜 의논 끝에 서로의 앞에 꽃병을 놓고, 꽃병에서 가장 먼저 빛이 나는 신이 인간을 돌보며 살아가기로 결정하고 잠들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석가모니가 가장 먼저 깨어나 꽃병을 보니, 매다르의 꽃병에서 빛이 퍼지며 꽃이 피고 있었습니다. 석가모니는 매다르의 꽃병을 자신의 것과 바꿔치기하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다음에 셋이 모두 깨어나 꽃병을 보고 석가모니의 꽃병에서 꽃이 피고 빛이 나는 것을 보고 석가모니가 인간을 돌보며 사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한편 메다르는 석가모니가 자신의 꽃병과 바꿔치기한 사실을 알고, 자신을 속여 인간을 돌보게 되었으므로 인간들은 위선적이게 되어 서로 속이고 거짓말하고 도둑질을 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에첵그와 함께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한편 신들이 인간을 만들 때 인간이 추위에 떨지 않게 하기 위해 털복숭이로 만들었고, 개는 반대로 털이 없는 벌거숭이로 만들었었습니다. 석가모니가 잠시 개에게 인간을 지키게 하고 하늘로 올라간 사이에 악마가 내려와 인간에게 접근하자 개가 짖으며 악마가 인간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악마는 개에게 “먹을 것도 주고 인간처럼 털도 줄 테니 짖지 말라”고 하였고, 개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짖지 않았습니다. 악마는 인간에게 침을 마구 뱉고 가벼렸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석가모니는 이를 보고 화를 내며, 개에게 ‘너는 언제나 배고파 할 것이며 뼈를 빨면서 떨고 돌아다닐 것이다. 또 인간의 구정물을 핥고 그들에게 매질을 당할 것이다’ 라고 하였고 인간의 더러워진 털을 뽑았습니다. 다만, 악마가 인간에게 침을 뱉을 때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은 머리털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신화와 비슷한 몽골 신화로는 어치르항 보르항(очирбаин бурхан)과 차강 슈헤르트(цагаан шүхэрт) 신화가 있습니다. 이 두 신은 같이 지구와 인간을 만들었지만 악마의 농간으로 사이가 틀어지게 되고, 결국 서로의 물컵에서 먼저 꽃이 핀 신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로 하였지만 차강 슈헤르트가 어치르항 보르항과 자신의 컵을 바꿔치기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신화는 놀랍게도 한국의 함경도 창세가에 있는 석가와 미륵의 꽃 피우기 경쟁 신화와 비슷합니다.

     

“ ·······애초 미륵님이 계시던 세월은 태평성세였다. 그런데 돌연 석가님이 내려와 이 세월을 빼앗으려 했다. 미륵님이 아직은 내 세월이라고 하자 석가님은 미륵님의 세월은 다 갔고 이제는 자신의 세월이라고 우겼다.
결국 미륵님의 제안으로 내기가 이뤄졌고 지는 쪽이 떠나기로 했다.  내기는 세 번에 걸쳐 이뤄졌다. 첫 번째는 줄에 매달려 있기, 두 번째는 여름 강물 얼리기였다.
두 번의 내기에 모두 진 석가님은 다시 한 방에 누워 모란꽃을 먼저 피워 올리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하자고 했다. 그렇게 마지막 대결이 열렸다.
미륵님 무릎에 모란꽃이 피어오르자 석가님이 그 꽃을 가져다가 제 무릎에 꽂았다. 미륵님은 석가님의 속임수와 성화에 못 이겨 세상을 넘겨주었다.
미륵님은 석가님의 세상이 다하면 찾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서럽고 힘겨운 말세가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한다.“


(법보신문中 일부 발췌.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0976)


여기서 신의 이름에 석가모니와 미륵이라는 불교적 이름이 쓰인 것은,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으나 불교가 들어온 후 이름이 바뀐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런 꽃 피우기 경쟁 신화는 중국에서도 유사한 설화가 있기 때문에, 2012년에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에서 ‘석가 - 미륵 경쟁화소(경쟁하며 꽃 피우기)의 기원과 아시아적 전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3. 달토끼 신화


부처님은 32개의 화신(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변하는 일)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토끼였습니다. 큰 토끼로 변한 부처님은 동물들의 먹이가 되어 보시(布施)를 했는데, 망긔르베 부처(мангырбэ бурхан)가 맹수가 먹고 남긴 토끼 가죽을 달에 가져다 두었고 이런 이유로 달에 토끼 같은 점이 보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달도끼 (출처 : 위키백과)


4. 에르히 메르겡(эрхий мэргэн) 신화 

 

오래 전 이 세상에 7개의 태양이 나타나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식물이 마르고 동물이 고통 받자,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에르히 메르겡이라는 명궁수에게 태양을 활로 쏘아 없애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에르히 메르겡은 “내가 일곱 개의 해를 일곱 개의 화살로 쏘아 맞추지 못하면 엄지손가락을 자르고, 물도 마시지 않고 마른 풀도 먹지 않는 동물인 타르왁(тарвага)이 되어 어두운 땅굴에서 살 것이다”라고 맹세했습니다.


에르히 메르겡은 6개의 화살로 6개의 태양을 없앴으나 7번째 태양을 쏠 때 제비가 방해하는 바람에 태양 대신 제비의 꼬리를 쏘아 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제비의 꼬리가 둘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에르히 메르겡은 자신의 얼룩말로 제비를 잡으려고 하였고, 얼룩말은 “만약 새벽까지 제비를 잡지 못한다면 제 다리의 관절을 꺾고 버리세요. 말이 되기를 포기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제비를 잡지 못하고, 에르히 메르겡은 얼룩말의 다리 관절을 꺾어 초원에 버렸더니 그 얼룩말은 들쥐가 되었습니다. 들쥐의 앞 두 다리가 짧은 것은 이러한 이유라고 합니다. 에르히 메르겡은 자신의 약조대로 엄지손가락을 자르고 타르왁이 되어 어두운 땅굴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타르왁(출처:http://ner.mn/?p=4068)


몽골 사람들은 타르왁 고기를 먹습니다. 그런데 이 타르왁에는 ‘사람 고기’라고 해서 먹지 않는 부위가 있는데, 그것이 에르히 메르겡의 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 남겨진 태양은 에르히 메르겡을 두려워 해서 아침 저녁이 교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와 달을 쏘는 이런 일월조정신화는 아시아 전역에 존재합니다. 우리나라에도 함경도 <창세가>제주도 <천지왕본풀이>에 일월조정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달토끼 설화는 줄거리는 다르지만 전 세계에 존재합니다.


에르히메르겡 신화 (출처 :  '에르히메르겡 궁사(Эрхий мэргэн харваач)' (몽골어) | 세이브더칠드런 - YouTube)


이렇게 다른 국가와 민족 간에도 비슷한 설화가 존재하는데, 창세 신화나 천체 기원 신화의 경우 비슷한 양상의 신화가 다른 분류에 비해 더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인접한 민족과 국가들이 서로의 문화에 영향을 주었거나, 민족에 관계없이 천지 창조나 ‘신’에 대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이 글은 2016년에 몽골에서 국립국어원의 국외통신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쓴 기사입니다.

국외통신원의 편지 (brunch.co.kr)


참고 자료:

<몽골 민족의 기원 설화> (편저자 д. цэрэнсодном. 옮긴이 이안나.) -울란바타르대학교 출판부

법보신문 :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097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창세가>, <천지왕본풀이>

불교닷컴 : 석가가 미륵의 세상을 탈취하려 한다? - 불교닷컴 (bulkyo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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