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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Apr 29. 2021

프랑스 선교사, 베트남의 문맹률을 낮추다

베트남. 2017년 9월 기획 원고

베트남은 한국 · 일본과 같은 한자문화권으로, 현대의 베트남어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오래전부터 한자를 사용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한자는 글자 수가 워낙 방대하고 베트남어의 음운과는 달라 평민들은 배우지도 사용하지도 못했고 상류층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14세기에 쯔놈(Chữ Nôm. 베트남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베트남의 고유한 표어문자. 우리나라의 이두와 향찰과 비슷함)이 만들어져 한자를 베트남어의 음운대로 표기하는 게 더 수월해졌으나, 글자는 여전히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베트남의 문맹률은 10%도 안됩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 글자를 사용 못 하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상류층만의 특권이었던 글자를 베트남 모든 국민이 쓸 수 있게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17세기 프랑스 선교사, 알렉상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입니다. 베트남에 파견 온 서양 선교사들은 16세기부터 베트남어를 로마자로 적는 일을 했으나, 알렉상드르 드 로드는 쯔꾸옥응우(Chữ Quốc Ngữ. '국어'라는 뜻)라는 새로운 문자 체계를 개발했습니다. 쯔꾸옥응우는 베트남어의 로마자 표기법입니다.                


   

베트남어 모음


베트남어 자음


쯔꾸옥응우는 위와 같이 12개의 모음과 17개의 자음, 복자음 CH(ㅉ) · NG(응) · PH(ㅍ) · TH(ㅌ) · TR (ㅉ) · NH(냐) · QU(ㄲ) · KH(ㅋ) · GH(ㄱ) · GI(ㅈ) 10개가 있습니다.

     

서양 선교사들은 17세기 무렵부터 베트남에서 선교를 시작하였고, 알렉상드르 드 로드도 베트남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1615년부터 베트남에 가톨릭 박해가 시작될 무렵인 1630년, 그리고 1640년부터 1649년까지 베트남에서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의 문맹률을 낮추고 선교 활동을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쯔꾸옥응우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1651년 로마에서 <베트남어 - 포르투갈어 - 라틴어 사전>를 출간하여 그가 만든 쯔꾸옥응우를 세계에 알렸습니다. 정세 불안으로 인해 1649년에 로마로 돌아온 그는 다시 베트남으로 파견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을 이루어지지 않았고 1660년 페르시아로 파견 간 그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좌) 알렉상드르 드 로드(출처: 위키디피아) / (우) <베트남어-포르투갈어-라틴어 사전>  (출처: 위키디피아)


그가 만든 쯔꾸옥응우는 처음에는 대중화되지 못했습니다. 19세기 초까지 베트남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문자는 여전히 쯔놈이었습니다. 알렉상드르 드 로드의 쯔꾸옥응우는 19세기 중반부터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화 계획이 시작되면서 점점 많이 쓰이게 되었습니다.  베트남을 침략한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만들기 위해 쯔꾸옥응우를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쯔꾸옥응우가 처음에는 반감을 샀으나, 쯔꾸옥응우가 보급된 지역의 문맹률이 낮아지자 곧 그 편리함을 인정하고 널리 보급 · 장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쯔꾸옥응우는 베트남 민주 공화국(호찌민의 베트남 독립 동맹회를 중심으로 세워진 공산 국가.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1945년에 세워짐.)에 의해 베트남 공식 문자로 채택되었으며 오늘날 베트남의 문맹률을 크게 낮추는 데 기여했습니다. 1943년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1887 ~ 1953. 프랑스의 동남아시아 식민지령.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로 이루어져 있었음)는 로드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기념우표도 발행했습니다.

                                                              

국제 문해율 지도(출처: UN Development Report 2011)


프랑스 선교사가 만든 베트남 글자, 비록 널리 보급된 계기는 프랑스의 수월한 베트남 식민 통치를 위함이라는 아픈 역사였지만, 쯔꾸옥응우는 전 베트남인들이 글자를 쓸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오늘날 베트남은 경제, 문화, 사회 면에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쯔꾸옥응우가 오늘날의 베트남을 있게 한 데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은 2017년에 베트남에서 국립국어원의 국외 통신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쓴 기사입니다.

국외 통신원의 편지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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