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무 오래, 괜찮은 척을 했다

아무도 모르게 무너지는 사람들에게

by 추설

요즘 따라, 아무 일도 없어도 피곤하다.
잠은 분명히 잤는데 몸이 무겁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즐겁지만
이상하게 대답이 조금 늦는다.
그냥 미소를 짓는 게
하루 중 가장 큰 노동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나를 걱정하면
나는 늘 같은 말을 한다.
“괜찮아요. 다들 그렇잖아요.”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너무 오래 반복하다 보니
진짜 마음이 그 밑으로 깔려버렸다.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물이 고인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면
순간 숨이 막히는 것처럼 가슴이 조여 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 울면 안 돼.”
그 한마디로 스스로를 단속한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대체로 밝고, 효율적이고, 빠르다.
그 사이에서 느린 사람은 불편해지고,
조용한 사람은 금세 잊힌다.
나도 잊히지 않으려고 애쓰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웃는 얼굴로, 피곤한 마음을 감추며.

언젠가 거울 앞에서
나 자신을 한참 바라본 적이 있다.
눈 밑에는 피곤이 내려앉았고,
입꼬리는 애써 올라가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진짜 나일까?’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로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무너지는 걸 허락했다.
피곤하면 잠을 자고,
슬프면 울고,
말하기 싫은 날에는 침묵했다.
그 단순한 일들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사람들은 강해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진짜 강함은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는 게 아니라,
무너질 수 있을 때
조용히 무너지는 용기에서 온다는 걸.

요즘은 그렇게 산다.
잘 지내냐는 질문에도
이제는 “그냥 그래요.”라고 대답한다.
그 말 속에는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겠다는
작은 다짐이 숨어 있다.

오늘 하루도 버텼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내일은 조금 더 괜찮을 수도 있고,
아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이젠,
진짜 괜찮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표지.jpg 작가의 첫 출간도서 소설- [세상의 없던 색]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444521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3화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