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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헤어졌다

떠나간 사람을 잊지 못한 이들에게

by 추설

그날은 특별하지 않았다.

비도 오지 않았고, 싸움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하루의 끝에서

우리는 조용히 이별했다.

마치 오래된 대화의 마지막 문장처럼,

더는 이어질 수 없다는 걸

서로 알고 있었다.


돌아서는 그 사람의 뒷모습이

이상하리만큼 담담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붙잡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붙잡아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며칠 동안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익숙한 이름을 몇 번이나 눌렀다가 지웠다.

‘잘 지내?’라는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그 말속엔 아직도 미련이 묻어 있을 것 같아서.

그 사람에게 미련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거리에는 여전히 같은 카페, 같은 길,

같은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안의 풍경만 달라져 있었다.

예전엔 그 사람이 좋아하던 음악이었는데

이젠 가사가 다르게 들렸다.

같은 멜로디인데,

다른 사람의 노래처럼 느껴졌다.


가끔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랑했던 건 서로가 아니라,

‘함께 있었던 시간’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 시간은 분명 진심이었고,

그래서 지금의 공허함도 진짜고

그렇기에 내 사랑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증거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는다고.

하지만 나는 듣고싶지도 믿고싶지도 않다.

잊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없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 빈자리를 안고 살아가는 일에.


요즘은 가끔 그 시간들이 떠올라서

아무 이유 없이 창문을 연다.

공기 속에서 그 사람의 향기를 찾는 버릇이 생겼다.

당연히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향기를 찾는 동안만큼은

잠시라도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사랑은 끝났지만, 기억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건 아마도 미련이 아니라

감정이 남긴 흔적일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 사람을 잊으려 하지 말자.

다만 그 기억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기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이별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첫 출간도서 [세상의 없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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