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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늘 늦게야 알게 될까

놓치고 나서야 이해한 마음에 대하여

by 추설

처음엔 그저 좋아서 시작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단순한 감정이었다.
그가 웃으면 나도 웃게 되었고,
그가 잠시 말을 아끼면 나도 따라 조용해졌다.
그 사람은 내 하루를 흔들었고,
그 흔들림이 싫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를 생각했지만,
그는 ‘자신’을 먼저 생각했다.
그 차이를 눈치채고도 모른 척했다.


사랑을 지키려면 때로는 모른 척해야 한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모른 척하는 사이,
우리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건
서로 노력하고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헤어지고 나서야 보였다.
그가 내게 해주었던 말들,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표정들,
그 안에 담겨 있던 신호를 왜 몰랐을까.
사람은 언제나 이별 뒤에야 선명해진다.
그때 보지 못한 것이,
지금은 이렇게 또렷하다.

그를 잊는 데 오래 걸렸다.
하지만 그를 미워하는 데에는
단 하루도 쓰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게 아니라,
내 안의 감정을 깨닫게 한 사람이었다.
사랑의 끝은 후회가 아니라 성장이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젠 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끝내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옆에 머무는 일이라는 걸.

사랑은 완성되는 감정이 아니라
언제나 도중에 머무는 감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늦게야 안다.
‘그때가 참 좋았구나’,
‘그 사람이 참 소중했구나’.

오늘도 누군가는 사랑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끝낸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아직 끝내지 못한 마음을 품고 하루를 버틴다.

나는 그 마지막 사람 쪽에 서 있다.
다시 사랑을 시작할 용기는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행복을 빌 수 있는 마음은 남아 있다.

그 마음 하나면,
다음 사랑이 언젠가 찾아올 때
조금은 덜 아프게 웃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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