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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전 Feb 02. 2020

'삶의 감옥'에 갇혔을때 펼쳐보는 책

-빅터 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살아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삶의 감옥'에 갇힐 때가 있다. 빛줄기 하나 보이지 않는 사방이 벽으로 막힌 독방, 예고도 없이 맞닥뜨리는 “삶의 감옥”이 견디기 힘든 이유는 언제 이 감옥을 탈출할 수 있을지 그때를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불현듯 철장이 덜커덕 내려 꽂히면서 삶의 감옥에 갇히게 되면 쇠창살을 부여잡고 분노하며 하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순간에 펼쳐 들면 고요한 위로를 건네는 책이 바로 빅터 프랭클의  <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태인 빅터 프랭클은 빈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을 하고 의사로서의 소명감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진료소에서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고삐 풀린 미친 말처럼 이성을 잃고 날뛰는 2차 대전의 시대적 운명을 그도 피해 가지 못한다.    


1943년,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열차에 강제로 태워지게 된다. 한 칸에 80여 명씩 짐짝처럼 집어던져진 유태인을 태운 기차는 몇 날 며칠을 달린다. 기차의 목적지는 아우슈비츠, 기차에서 내린 1500여명의 수용자들은 나치 장교 앞에 서서 심사를 받게 된다. 수용자들을 눈길 한 번으로 휙 훑은 심판관들은 손가락으로 오른쪽, 왼쪽을 가리킨다. 그중 왼쪽으로 향했던 90%의 사람들은 바로 그날 가스실로 직행해 죽음을 맞이했다. 허약해 보였던 빅터 프랭클은 그날 하루 동안 장교의 손 끝에 따라 때로는 왼쪽으로, 때로는 오른쪽으로 삶의 죽음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그가 선 곳은 가스실이 아니라 작업장이었다.    

세상에서 가졌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상에서 가졌던 계급장을 떼고 알몸이 된 수감자들, 그들은 가스실에서 죽어간 누군가의 수의를 받아 입고 수용소 생활을 시작한다. 수용소에서는 그가 세상에서 어떤 사람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았는지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름도 없이 그저 수감번호 하나가 그의 모든 것을 대신한다. 매서운 폴란드의 겨울, 평생 공부만 하던 빅터 프랭클에게 주어진 일은 꽝꽝 언 땅을 파서 선로를 부설하는 일, 고단한 일상을 마치고 돌아오면 흙덩이가 덕지덕지 묻은 신발을 베개처럼 베고 9명이 고작 담요 2장으로 밤을 지내야 하는 처절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하루 수 십 명이 명령에 따라 가스실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주검이 되어 나오는 처참한 환경, 더 서글픈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죽은 시신이 남긴 옷이나 신발 심지어 시신이 손에 쥐고 있던 감자까지 뺏어 먹는 참혹한 현실이다.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는 상황, 수용소에 갇힌 이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아무것도 없다. 시키는 대로 밥을 먹어야 하고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고 죽으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제 발로 가스실로 걸어 들어가 죽어야 한다. 암울하다 못해 처참한 상황에서 빅터 프랭클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 자신들에게도 아직 하나의 자유가 남겨져있음을 발견한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자연에 감동하는 사람이 있고 작고 사소한 일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으며 마지막 남은 빵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자신의 죽음 앞에서 조차 담대하게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다.     


어느 날 한 수감자가 탈출을 하다 붙잡혔다. 당시 독일군들은 한 명이 탈출하다 발각되면 수감자 열 명을 무작위로 뽑아 죽였다. 독일군이 10명의 수감자를 무작정 뽑자 그중 한 유대인 남자가 자신은 가족이 있으므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한다. 그 순간 콜베 신부가 그 유대인 대신 자신을 죽여 달라고 자원해 나선다. 콜베 신부를 포함한 10명의 수용자들은 아사 감방에 갇혀 석탄 주사를 맞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나이 47세 때였다.     

아유수비츠에서 죽음을 자원한 콜베신부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  
-빅터 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3년 동안 빅터 프랭클이 발견한 것은‘내면의 힘’이었다.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는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으며 그 내면의 자유는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 말기, 빅터 프랭클이 의사인 것이 알려지면서 수용소 내 환자 보호소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때 몇 차례 탈출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러나 그는 탈출의 기회를 포기하고 환자들 곁에 남는 길을 선택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탈출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앞 다퉈 트럭에 올라탔던 사람들이 모두 가스실로 향했던 반면 환자들 곁에 남는 길을 선택한 그는 살아남는 운명의 역설을 경험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세상으로 나온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심리치료법을 만들어낸다.     

아우수비츠의 경험을 바탕으로 '로고테라피'를 개발한 빅터프랭클
왜 살아야 하는 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


바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로고 테라피’.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아들러와 함께 제3의 심리학으로 불리는 ‘로고 테라피’는 삶의 좌절과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시련은 인간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라는 사실을 자신의 삶을 통해 증언하고 있는 빅터 프랭클, 그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계급장 떼고...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이 지금 갇힌 ‘삶의 감옥’이 당신이 진정한 인간임을 보여 줄 
또 다른 기회인 것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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