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 정리하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오랫동안 쌓아둔 물건들이 여기저기 가득하다. 책장에는 책과 학용품이 어지럽게 널렸다. 옷장 안은 티셔츠, 바지, 코트, 점퍼 등이 뒤엉켰다. 방 한쪽에 모자, 탁상시계. 빨랫감이 산처럼 쌓였다. 막상 정리하려니 머리만 복잡하다. 무작정 달려들기보다 버릴 물건부터 차분히 분류해야 정리가 빠르다. 옷장 깊이 쑤셔박힌 물건부터 몽땅 꺼내놓는 것부터 시작이다.
뒤엉킨 공간을 정리하고 깔끔하게 수납하는 구조화 과정이 필요하다-Pixabay
머릿속이 엉켜있으면 글이나 말도 역시 엉킬 수밖에 없다. 글쓰기란 ‘생각이나 사실 등을 글로 써서 표현하는 일’을 뜻한다. 뜻풀이로 접근하면 먼저 생각이나 사실을 정리하는 일이 앞쪽에서필요하다. 그다음에 글로 표현하는 과정이 뒤쪽으로 이어진다.
자칫 글쓰기가 막힌다고 글로 표현하는 뒤쪽 단계에서 머무르면 효율성만 떨어질 뿐이다. 글쓰기 능력을 키우려면 앞쪽에서 생각을 구조화하는 능력과 함께 뒤쪽에서 표현하는 능력도 키워야만 효과적이다.
스키마(Schema), 생각 도식 구조화로 글쓰기 고수로 거듭나기
장 피아제(Jean Piaget)는 스위스 철학자이며 발달심리학자로서 특히 인지발달 과정에서 스키마(Schema) 이론을 주창한 인물로 알려졌다. 스키마(Schema)란 ‘도식’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스키마는 과거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뇌 속의 구조 도식 또는 모형으로 설명한다. 우리 뇌는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일정한 방식에 따라 입력하여 저장한다. 또한 추가로 들어오는 정보는 이미 만들어진 기존의 구조 틀에 맞춰서 다시 입력한다. 이러한 기존 틀을 스키마라고 부르며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입력하여 조정하고 저장하는 역할을 맡는다.
어떤 분야에서 고수나 달인이 됐다는 말은 그 분야 지식을 머릿속에 구조화했다는 말이다. 눈감고도 안다. 흔히 무언가를 자세히 보지 않아도 눈에 훤하다 표현이다. 머릿속에서 어떤 과정 전체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어릴 적 공부를 잘한다는 칭찬은 암기를 잘한다는 단어로 이해했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내용을 잘 외워서 좋은 시험 성적을 얻으면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부할 내용이 점차 많아지면서 무작정 외우기만 해서는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복잡할수록 구조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스키마 이론에 적용하면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는 구조화를 잘한다는 말과 통한다. 이상하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새로 배운 내용을 금방 이해하고 기억한다. 아마 새로운 공부 거리가 다가오면 이미 가지고 있던 배경 지식에 맞춰서 빠르게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으로 접근했기 때문일 것이다. 덧셈도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순서대로 출발했다. 강아지, 고양이, 문어, 잠자리 등 동물 이름부터 배우고 척추동물이나 무척추동물로 나아갔다. 스키마가 정교하게 구조화할수록 정보습득능력, 즉 학습능력이 좋다는 의미다.
마인드맵을 활용한 주제 글쓰기
뒤엉켜있는 글감들을 구분하여 묶는 방법으로 구조화한다. 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면 영역별로 구분하여 묶는 과정이 필요하다. 성격이나 성질 또는 모양이 비슷한 유형끼리만 묶으면 글을 몇 덩어리로 나눌 수 있다. 여러 아이디어를 크기, 형태, 종류 등 각각 분류 기준을 세운다. 만약 동그라미, 세모, 네모 여러 개가 섞여 있으면 같은 모양끼리 구분한다. 동그라미는 동그라미끼리, 세모는 세모끼리, 네모는 네모끼리 구분한다. 이렇게 구분하는 일을 ‘생각 영역화’라고 부른다. 분류 기준만 명확하면 덩어리로 묶인 내용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글 한 편을 뚝딱 완성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음식을 가져와서 묶음 기준을 세워보자. 김치찌개, 된장찌개, 청국장, 한식, 자장면, 짬뽕, 탕수육, 중식, 스시, 일식, 마구로, 와규 구이 등 여러 요리가 섞였다고 치자. 그러면 비슷한 영역끼리 묶음을 만든다. 첫째, 한식에 김치찌개, 된장찌개, 청국장을 묶는다. 둘째, 중식에 자장면, 짬뽕, 탕수육을 묶는다. 셋째, 일식에 스시, 마구로, 와규 구이다. 이렇게 영역에 맞게 묶으면 완성이다.
글에서 묶음 단위가 단락이다. 만약 음식에 대한 글을 쓴다면, 한식에 관한 내용에 김치찌개, 된장찌개, 청국장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씩 쓰면 글을 쉽게 완성할 수 있다. 한식 이야기에 대한 글 한 편을 차례로 김치찌개 문단, 된장찌개 문단, 청국장 문단을 써서 완성하면 간단하다. 생각을 묶는 영역화 작업은 글을 읽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구조화 과정이다. 읽는 사람도 일목요연하게 쓰여진 글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