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다 보니 집밥이 그립다는 말, 엄마 밥이 그립다는 말을이해하게 되었다. 회사에서1인분에 몇만 원 하는 소고기를 먹어도,친구들과 제주도의맛집을찾아다녀도,왠지 모르게 채울 수 없는 허기가 있다. 바깥 음식으로는채워지지 않는묘한허기,집밥이 그리운 이유는 거기서부터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들~ 뭐 먹고 싶어?"
부모님과 떨어져 산지 6년이 되었다. 스물여섯에 입대, 스물여덟에 전역, 스물아홉에 혼자 살기 시작해 어느새 서른한 살이 되었다. 전역하고 잠시 부모님과 살기도 했지만, 취직하고 얼마 안돼 나는 자취를 시작했다. 그런 내가 본가에 갈 기회가 있으면, 엄마는 며칠 전부터'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신다. 그럴 때마다 대답은한결같다.
"새우탕이요"
"새우탕 해주세요"
"새우탕 ㅎㅎ"
"삼겹살..... 아니 새우탕이요"
조금 과장하면 매번, 현실적으로 말하면 십중팔구,새우탕이 먹고 싶다고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식, 본가에 갈 때마다 노래를 부르는 음식, 그건 바로대하를 넣고 끓이는 엄마의 새우탕(대하탕)이다.
'뜨거워 조심해~' 하며 엄마가 펄펄 끓인 냄비를 식탁에 가져오신다. 나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냄비를 바라본다. 새우탕의 묘미는 냄비를 여는데부터 시작하는데,팔팔 끓인 냄비뚜껑을 열면 새하얀 김이 천장에 닿을 듯 올라온다. 그 아래 보이는 새우는 살이실해 껍질이 터질 것 같다.마디마다 빨간 고춧가루가 끼어 있고,썰려 있는 청양 고추는 얼큰한 국물 맛을 기대하게 한다. 주의할 게 있다면 각자의 앞접시 담아낼 때, 싱싱한 바지락이 골고루 분배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주인공은 새우다. 새우는 아무리 뜨거워도손으로 집어야 한다. 머리를 때고꼬리를 집어그대로입에 넣는다. 껍데기를 꼭 발라서 먹는 사람들이 있지만,나는 벗기지 않고 먹는 게 취향이다.한입 씹으면살과 껍질사이의국물이 쪽 하고 터지고,껍데기의 바삭한 고소함이 새우살의 식감과 어우러진다.바지락 살담긴 국물에밥을 말아먹으면,서울에서 공주까지 200km를 달려온 피로가 사라진다.이래서 내가 새우탕 새우탕 하나보다.
'식시오관(食時五觀)'이란19세기 초 양반가 안주인인 빙허각 이 씨에 의해 쓰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 식사할 때 가져야 할 다섯 가지 마음가짐을 일컫는 말이다. 그중 첫 번째는 음식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공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힘들음, 공부(工夫)의 다소를 헤아리고, 저것이 어디서 왔는가 생각해보라. 갈고 심고 거두고 찧고 까불고 지져 공이 많이 든 음식이다. 하물며 산짐승을 잡아 살을 베어 내어 맛있게 하려니, 한 사람이 먹는 것은 열 사람이 애쓴 결과이다.
- <규합총서> -
식재료부터 음식이 만들어질 때까지의정성을느껴야 한다는 말인데,우리가 집밥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내가 집에 가기 전부터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보신다. 메뉴가 정해지면 두 손 무겁게 장을 보고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요리를시작하신다.도착하기 30분 전에는 밥도 새로 안치신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요리, 가족만을 위한 음식, 그게 바로 엄마의 밥상이고 나의 집밥이다. 밖에서 먹는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왠지 모르게허한 느낌이 드는 건, '엄마의 정성', 그것이 거기엔 없기 때문이다. 이게내가 집밥을 그리워하는 첫 번째 이유다.
생각해보면 내가 새우탕을 좋아하는 만치로 엄마에게도 새우탕은 중요한 음식인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엄마 요리의 필살기랄까(아니라면 죄송합니다), 엄마에게는 새우탕이 그런 음식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중요한 순간마다 엄마는 새우탕을 끓이시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 할아버지가우리 집에 오신 적이 있다. 70이 넘은 연세에도충남 부여에서 서울까지먼길을 운전하셨고한 가마니의 쌀도손수가지고 오셨다. 그날도 우리는 새우탕을 먹었다.그날을기억하는 이유는할아버지에게 처음으로 꾸지람을 들은 날이기 때문이다. 내 앞접시에만 새우를 가득 담자 할아버지는 '하나씩 먹어라'라고하셨다. 짧지만 강한 억양이셨고,그렇게 10년 인생 처음으로 할아버지에게 쓴소리를 들었다. 그 날, 먼길을 달려오신 시아버지를 위해내놓은엄마의 필살 요리가바로 새우탕이었다.
작년 추석에도 엄마는 새우탕을 끓이셨다. 외가 식구들이 모인 날이었는데, 새우탕을 먹다가 혼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외삼촌이 둘째와 셋째 딸에게 새우를 일일이 까주자 큰 이모가
'그러다 애들 버릇 나빠져'
라고 한마디 하셨다.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이 된 딸들에게 새우를 하나하나 벗겨주는 삼촌이못마땅하셨나 보다.
근데 삼촌네 세 자매의 큰 딸, 그러니까 새우를 받아먹기만 한두 동생들의 맏언니였던첫째, 고등학교 1학년밖에 안된 그 아이는 새우를 까서 할머니의밥그릇에 올려 드리고 있었다. 그때 할머니는 새우를 까서 나에게 주고 계셨고, 나는 처가에서도주방을 나오지 않는엄마를 위해 새우를 까고 있었다. 17살 소녀부터 88세 할머니까지, 새우를 까서 서로가 서로에게 나누던 그 날, 동화 같기도 하고드라마 같기도 했던 그 장면이 나에게는 참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족을 다른 말로 식구(食口)라고 한다. 같은 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한다는 말이다. 집밥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온정이 있다. 서로에게 새우를 까주는 따뜻함이 있다. 새우를 쌓아놓는 나를 언짢아하셨던 할아버지의 마음도 '내가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서'였기 때문이라고생각한다. 명절날이면 삼강오륜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나에게 한서(漢書)를 보여주시던 할아버지.내가 '내 것만 챙기는 사람'이 아니라 '새우 하나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큰 이모의 말마따나오냐오냐 새우를 받아먹기만하면사촌동생들의 버릇이잠깐은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새우를 까주는밥상 문화에서 자란 그 아이들이삐뚤어진 어른으로 커나갈 일은 별로 없지 않을까. 할머니의 새우를 까주던 맏언니처럼,이제는엄마입에 새우를 넣어줄 수 있는 나처럼, 둘째와 막내도 시간이 흐르면 삼촌의 밥그릇에 한 마리의 새우를 올려줄 수 있지 않을까.집밥에는 가족이 있고 정이 있다. 그 따스함이 함께한다. 이게 바로 집밥이 그리운 두 번째 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다. 매일의 일상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가족이라고 해서항상 따뜻하고, 늘 좋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갈등을 참으며아무 말 없이 밥을 먹을 때도 있고, 터져버린 갈등으로 큰소리 내며 싸울때도 있다. 때로는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쾅하고 문닫으며 방에들어가기도 한다.
가족이란,그 모든 기억을 함께나눠온 우리의 울타리다.기쁘고 행복해도, 서럽고 화가 나도,우리는 매일의 끼니를 늘 함께 쌓아왔다. 그런갈등의 시간과 감정의 무게를 견뎌내고, 여전히 생일에는 케이크의 촛불을 불고, 설과 추석에는 서로의 안녕을 기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 마주하며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우리, 그게 바로 식구인 것이다.
살면서 점점 느끼는 건 나라는 사람, 나라는 자아가개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때로는삶에 지치고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할 순간도있다. 그때우리는
'인생은 혼자야'라고한다.
하지만내 안에는 분명히 식탁에앉아밝게 웃는 아빠가 있다. 화를 내는 아빠와슬퍼하는 아빠,삶에 지친 아빠도 있다. 그걸 보며 같이 웃고,함께우는 엄마도 있다. 그 모든 시간을 바라보는 나도 있다. 지지고 볶아도 결국은 식탁에 모여밥을 같이 먹는 우리. 나는 그렇게 커왔고 그 모든 감정이 어우러져 지금의 내가 되었다.
작년 겨울에 떠난 제주도 여행,아늑한 숙소와겨울 햇살, 좋아하는 친구들과 맛있었던 흑돼지,더할 나위 없는행복이었다. 행복에 겨워숙소 소파에 누워있는데 불현듯
'나만 너무 행복한 게 아닌가'
라며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노년을 앞둔 엄마와아빠, 그들의 행복은 무엇인지, 내가 이렇게 행복한 시간에 두 분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나만 너무 좋은 곳에서 혼자서만 맛있는 걸 먹고 있지는 않은지죄송했다.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연락도안 하고집에 가는 일도 뜸했던 나. 그런 나에 대한자괴감도들었다.하지만 죄송함과 자괴감보다도더 크게 느낀 건그리움이었다.부모님이그리웠다. 그들이 보고 싶었다. 엄마랑 아빠가,그리웠다.
식구는 각자일 수 없다. 서로의 기쁨도 슬픔도함께 나누며 살아왔다. 시간의 무게를 견뎌낸 가족이라는 울타리, 마음속 깊은 곳 서로가이어져있다는 실감, 아무리 맛있고아무리 비싼 걸 먹어도, 식구이자 가족인 우리는 함께여야 완전할 수 있다.집밥이 그리운 세 번째 이유는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