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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Jul 03. 2020

장마철, 뚜껑 깨진 장독대에 미소 지은 이유

비와 당신의 이야기

"비 좋아하는 센치한 새끼들 있어"

 

학생 때 버스에서 들은 얘기다. 버스 맨 뒷좌석의 아저씨들은 비 오는 날의 낚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침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대화의 구체적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비올 때 하는 낚시는 별로다'라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아저씨가 저렇게 말했다. 비를 좋아하는 센치한 새끼들이 있고, 그런 애들은 비 오는 날의 낚시도 좋아할 거라고.

 

아저씨들은 왜 비 오는 날을 싫어했을까. 비 오는 날의 꿉꿉한 습기와 끈적한 방바닥이 싫었을까. 아니면 마르지 않는 빨래가 별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꾸 젖는 어깨와 축축해지는 바짓단이 었을까.


비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질색하는 것 중에 하나는 비 오는 날의 출근길이다. 회사에 지각하기 상이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도 버스는 오지 않고, 길이라도 막히면 애써 탄 버스도 는 것보다 느리다. 을 것 같아 애가 닳는데, 접는다고 접은 우산에 빗물이 떨어져, 옆 사람의 눈총까지 따갑다. 하나에서 열까지 조심스러운 하루, 비가 오면 몸도 마음도 처 채 하루를 시작다.


비 오는 날의 낚시에 대해선 모르고, 생각만 해도 고생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래도 비 내리는 날의 감상을 좋아한다. 어두운 하늘의 우중충한 느낌도 좋고, 솨라라 떨어지는 빗소리도 좋다. 비 냄새는 추억을 부르고,  맞는 축구도 가끔은 좋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만 아니면, 다림질한 옷에 왁스까지 바른 날만 아니면, 비 오는 날의 낭만 좋한다. 내가 바로 비를 좋아하는 센치한 새끼, 그 새끼다.

어려서 할머니와 살 때 거실에 누워 떨어지는 비를 구경했다. LP 판이 쌓여있는 전축 옆엔 무릎에서 시작하는 유리창, 나보다 큰 유리창이 있었다. 그 옆에 누워 내리는 비를 감상했다. 창 옆의 장독대 껑 위로는 빗물이 여 쌓이곤 했다. 방울방울 원을 그리며 그 위에 떨어지는 비, 내리는 비에도 뚜껑 위에 고인 물은 늘지도 않았고, 그 모양 좋아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장마철인 요즘은 매일이 비다. 무더위를 앞둔 장마라는 계절, 장독대 위의 빗물이 좋았던 25년 전의 꼬마는 어느새 서른을 넘어 회사원이 되었다.


서른한 살의 일상은 정신이 없다. 출퇴근하는 1호선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쏟아지고, 자꾸 울리는 카톡과 문자, 요새는 확진자를 알리는 기관의 경고까지, 정신 놓을 틈이 없다. 퇴근하 글까지 쓰면 일이 금방이라 오늘이 내일인지 어제가 오늘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장마라서 며칠 째 비가 오고 있지만, 비를 찬찬히 구경할 시간은 아쉽게도 없다.


그런 걸 생각하면 어려서의 여유는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멍하니 누워 나리는 빗방울을 지켜보고, 그 방울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던 낭만, 그때 떨어졌던 비는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에 맺혀 있다. 덕분에 나에게 는 낭만과 여유의 상징이 되었고 행복했던 유년을 떠오르게 만든다.




비를 싫어하는 아저씨와 비를 좋아하는 나, 그런 우리네 일상 비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그것이 소소한 낭만과 증이 아닌, 삶을 위협하는 실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해서 알게 되었다. 살면서 수해에 대한 뉴스는 수 없이 해봤지만, 이제야 그게 어떤 건지 알게 된 것이다.


수해라는 건 변기 올라온 하수도의 똥물이 내가 자던 이불에 쏟아지는 것이었다.


매일 먹고 자던 우리의 보금자리, 그곳에 서려있는 삶의 온기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게 수해다. 머리로야 알고 있었지만, 그게 하나의 실감으로 마음에 자리 잡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말이다.


영화관에서 <기생충>을 보고 나왔는데 왠지 모르게 세계가 뒤틀려 보였다. 이질감이라고 해야 할까.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 그들의 움직임 상하게 낯설었다. 상에는 짜파게티 하나에도 한우를 넣어 먹는 사람들과 종이 박스 접어야만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그들이 함께 만드는 게 삶이라는 비극인데, 이 거리의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활짝 웃고 있는지, 그들의 모습이 현실 같지 않았다


어딘가는 빚에 쫓겨 부잣집 지하에 기생하는 람이 있을 수 있고, 어쩌면 영화보다도 잔인한 현실이 변에도 있을 텐데, 살면서 지금껏 경험 온 세상은 '작고 이쁘기만 했던 것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현실 같이 잔인한 영화, 영화보다 잔인한 현실, 그런데도 내 앞을 오고 가며 미소 짓는 사람들, 거기서 오는 이질감 한참음이 묵직했다.

영화 <기생충>

2001년 장마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TV 에선 중랑천의 범람을 알리는 특보가 매일 보도되었다. 그로 인해 수해를 입은 거주민의 소식까지 함께였다. 중랑천이 흐르는 노원구의 주민이었지만 뉴스보는 나에게 마음 밖의 일이었다. 물을 퍼내는 주민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쳐도, 갈길 잃은 그들 목소리가 마이크에 담겨도, 별른 생각이 없었다.


비가 멈추기를 바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잠 못 드는 밤이 싫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집을 떠나 부모님이 계신 서울에 왔을 때, 한 동안 내 방에서 잠을 자지 못했. 특히 덥고 습한 여름은 더 심했는데, 장마철엔 쏟아지는 빗소리까지, 도저히 편하게 잠에 들 수 없었다.


방보다는 거실이 나, 거실의 파 옆에 요를 깔고 누웠다. 소파에 바짝 붙어 몸을 소파 쪽으로 돌린 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등 뒤 TV를 었다. TV의 빛과 소리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파란광의 불빛이 등 뒤에서 퍼졌다.


켜놓은 TV에선 새, 중랑천 범람을 경고하는 뉴스가 방송됐다. 하지만 그 소리는 좀 더 잘 자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뉴스 속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들의 소식을 공감해줄 그릇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세상은 이쁜 비가 내리는 장독대 뚜껑 위가 전부였다. 늘지도 줄지도 않는 고요한 빗물 세계, 그 안이 전부였다. 귀를 울리는 뉴스는 편한 잠을 기원하는 소음 뿐이었고, 빨리 잠들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기생충>을 보고 세상이 낯설게 보였던 이유는 영화가 쏟아낸 감상으로 나의 세계가 깨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평화던 그곳엔 변기통의 똥물이 흘렀고, 장독대의 뚜껑 쏟아지는 폭우에 금이 가고 있었다. 장가일 뿐이었던 TV 속의 소음, 어쩌면 나의 세계가 되었을 수도 있는 그 안의 비극이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균열이 생고 첫 번째로 찾아온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나는 수해를 겪은 적이 없었고 것을 걱정해본 적도 없었다. 살면서 여러 가지 힘든 일, 비단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가 흔들렸을 때도 있지만 어도 생사 대한 위협 두려웠던 적은 없던 것이다.


그리고 안도감 뒤에 찾아온 하나의 감정, 그건 거의 나를 반성는 마음이었다.


'귀를 때리는 이재민들의 뉴스에도 빨리 잠들기만을 바랐던 나'


나이가 어려서 그랬다기보는, 성인이 되어서도 수해에 대해서, 내 이웃일 수도 있는 그들의 비극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떨어지는 비만 봐도 물로 가득 찬 <기생충>의 지하방이 떠오른다. 그렇게 그 영화의 이야기는 내 안을 흐르고, 그 덕에 비로 인해 슬플 수 있는 누군가의 삶과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등 뒤의 뉴스를 무시했던 나는 이제 소파로 향한 몸을 돌려 TV 안의 슬픔을, 그 속의 겨운 이야기를 마음에 담을 수 있게  것이다.


내 안에 더 많은 이야기가 흘렀으면 좋겠다. 나의 이야기와 당신의 이야기, 우리 모두의 서사를 담아내며 살고 싶다. 그렇게 마음에 다양한 이야기가 흐를 때, 세상을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거기서 얻는 여러 가지 감상으로 내 안의 작은 세계를 깨쳐가고, 그렇게 나라는 인간을 좀 더 풍요로운 존재로 만들고 싶다.


솔직한 말로 스로의 희로애락은 무시한 채, 다른 이들의 기쁨과 슬픔에 먼저 웃고, 먼저 울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장마철이 되고 태풍이 오면, 그렇게 비가 쏟아지면, 어린 날의 행복한 낭만만이 아니라 이 비에 슬퍼할 누군가의 마음을 알고, 그들의 고난에 작은 애도 한번 표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


작은 세계, 장독대 뚜껑 위의 평화롭던 세계는 내리치는 폭우에 서졌고, 덕분에  작은 미소 하나 지을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afeinfofam&logNo=221380719118&parentCategoryNo=&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List

- http://www.nyculturebeat.com/index.php?document_srl=3882267&mid=Film

- https://1boon.daum.net/realfood/koreanrice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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