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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Oct 07. 2020

이효리가 쏘아 올린 작지 않은 공

기특한 날, 기특한 널

사람들은 세 가지의 삶을 산다.


공적인 삶 개인의 삶 그리고 비밀의 삶이다. '완벽한 타인'이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한 개인의 모습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인데 사회적인 자아와 개인으로서의 자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 안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자아를 요새는 '멀티 페르소나'라고 한다. 회사에서는 꼰대 같은 상사도 가정에서는 누구보다 따뜻한 아버지일 수 있고, 언제나 관대하고 친절해 보이는 옆집 아저씨가 집에서는 가정폭력의 주범일 수 있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인일 때의 나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일 때의 나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냐, 없냐가 자기를 사랑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 된다. <완벽한 타인>의 표현을 빌자면 '공적인 삶'보다는 '개인의 삶'과 '비밀의 삶'에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는 말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

한 번은 죽은 쥐를 묻어준 적이 있다. 2016년 겨울이었고 군 생활하던 시절이었다. 장교로 복무했던 나는 영외 숙소에서 생활했고 거기에서 출퇴근하는 상을 보내고 있었다. 평일이었으면 동료의 차를 타고 집을 나섰겠지만 그날은 주말이도보로 40분 거리인 부대를 직접 걸어서 출근했다. 숙소를 나와 부대로 가는데 인도의 전봇대 옆에 조그마한 쥐가 죽어 있었다. 피는 없었고 눈만 감은 채라 모습만 보면 죽었는지 아닌지 구분이 어려웠. 하지만 분명히 거기에는 살아있다는 기운이 없었고, '죽었구나...' 싶었지만 눈살만 찌푸린 채 그대로 지나쳤다. 쥐였고, 시체였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는 눈이 내렸다. 걸어서 숙소로 가고 있는데 아까 보았던 쥐가 그대로 눈에 덮여 있었다. 함박눈이었으면 아예 가려져 안 보였을 텐데 작다면 작은 눈발에 반만 덮인 모양이었다. 때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게 뭔가 안쓰러워 옆의 화단에 무덤을 파서 묻어줬다. 그 와중에 몸통을 잡기는 싫어 손가락 끝으로 꼬리를 잡고 들어줬지만 그래도 무덤에는 모양을 낸다고 나뭇가지까지 꽂아줬다. 살면서 인상 깊은 장면 중에 하나고 지금에 와서는 꽤나 중요한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상징 같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기억이 중요한 이유는 그런 작은 생명에도 '연민'을 가질 수 있는 마음, 그런 모습이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서 확인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모기는 수도 없이 죽였 길에서 방황하는 고양이한테도 먹이 한번 준 적이 없는 나였다. 때로는 냉정하고, 때로는 차가운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그날은 연민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걸 행동으로 실천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나도 작은 생명을 귀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마음으로 나에게 남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칭찬해줄 수 있는 기억들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호감을 사기 위해 애써 하는 행동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순간이 필요하다. 공적인 삶에서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보다는 개인의 삶에서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기억을 많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 때문에 쥐를 묻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옳다고, 또는 맞다고, 때로는 좋다고 느끼기에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효리가 말했다. "내가 나를 예쁘게 안 봐서 그런 거야 사람들이 예쁘게 안 보는 게 아니라...">

이효리는 '캠핑 클럽'이라는 예능에서 남편인 이상순과의 일화를 들려다. 어느 날 이효리와 나무 의자를 만들고 있던 이상순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의자 밑바닥을 계속 깎았다. 그걸 본 이효리 답답해서 물었다.

이효리 : 여기는 사람들에게 안보이잖아, 누가 알겠어?
이상순 :...... 내가 알잖아


그때 이효리는 이상순의 말을 듣고, 남의 시선보다는 스스로가 자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는 걸 깨달았다. 그게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걸 배웠다고, 스스로가 자신을 기특해하는 순간이 많을수 자신을 보다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자존감을 높이고 싶어서 읽었던 여러 책 보다 이효리가 방송에서 말한 이야기가 나에게는 더 큰 울림을 주었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런 행동들, 나만 알아도 행복하고 누가 보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는 그런 행동들을 많이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단지 머리로만 나를 사랑하자, 남들의 눈치를 보지 말자,라고 백번 되뇌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자기가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행동, 내가 나를 칭찬할 수 있는 행동을 하루에 한 두 가지라도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반대로 살았다. 남들 보기 좋은 행동만 하며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는 삶이었다. 회사나 군생활에서는 예스맨이었고 누군가의 사소한 부탁 조차 제대로 거절하지 못했다. 말 잘 듣고, 화내지 않고, 거절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문제였던 이유는 그 안에 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 '내 감정',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없었다. 그런 내 바람과 반대편에 있는 일이라도 남들이 그게 맞다고 하니까, 남들이 그게 좋다고 하니까 랐다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고 누가 칭찬이라도 해주면 그게 또 좋다고 그런 행동을 반복했다.


물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관계 속에 사는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존재를 인정해달라는 자연스러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잣대를 계속 다른 사람에게 두다 보면 '진짜 내 모습'을 잃을 수 있다. 타고난 모습은 정해져 있는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호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맞출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어떻게 해서도 맞출 수 없는 것도 있다. 사람들이 닭다리를 좋아한다고 해서 가슴살로 태어난 내가 다리살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왜 나는 가슴살이냐고, 왜 나는 닭다리가 될 수 없냐고 괴로워만 하기엔 한번 사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다. 겨울밤 쥐를 묻어줬던 기억은 마음에 남아 나라는 사람은 '때로는' 작은 생명 하나에도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줬다. 그 기억 덕분에 비록 냉정할 때도 많지만 가끔은 내 안에 그렇게 따뜻한 모습도 있는 걸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누가 보든 안보든 자기가 자신을 칭찬할 있는 행동을 의식적으로라도 해야 한다. 공적인 삶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지 말고, 혼자 있을 때, 나 혼자만 아는 내 모습이뻐할 수 있는 행동해야 한다. 미움받을 용기는 그런 기억을 쌓을 때 기를 수 있다.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도 니 막무가내로 행동해라, 그게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라는 게 아니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를 생각하기에 앞서 자기만의 잣대를 가지고 스스로의 기준을 만족할 수 있는 행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기억을 쌓으라는 말이다. 자기의 욕구를 사랑하고, 자신의 기호를 존중하고, 그 안에 있는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렇게 먼저 자기를 사랑하다 보면 때로 남들과 나의 시선이 다를 때도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닭다리가 맛있으니 너는 닭다리가 되어라!'라는 말에도 '저는 가슴 살인 걸요!'라고 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이 주는 칭찬보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인정을 더 소중히 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 자기 자신이 기특하다고, 누가 뭐라 해도 부끄럽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 수 있는 삶을 만들고 싶다. 내가 나를 알아주는 삶, 나만 알아주어도 괜찮은 삶, 그렇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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