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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Oct 11. 2020

친구의 연봉이 부럽지 않은 이유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왜 나를 챙겨주지 않냐고, 가족이라면, 친구라면 그래야 하지 않냐고 기대하지 않는다.  무게를 지닌 게 인생이고 나 역시 내 인생을 꾸려가기도 쉽지 않다. 그들이 나를 위해 살 수도 없고 내가 그들을 위해 살 수도 없다.  인생이라는 여행을 즐기기 위해선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는 게 첫 번째다. 내 가방을 내가 간수하지 않으면 누가 길 수 있겠는가.  여권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그래서 나는 나도 '온전히' 믿을 수 없다. 괜찮아 보일 때도 있지만 '도대체 왜 러냐' 싶을 때도 있다. 에게 의지가 될 만큼 긍정적일 때도 있지만 군가에게 자꾸 기대고 싶을 만큼 부정적일 때도 있다. '중 어느 게 너야'라는 물음에 대해 대답하자면 '둘 다 나야~'가 맞지 싶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플 예정이라는 것, 잠을 자지 못하면 예민해질 거라는 것, 그리고 하루에 꼭 몇 번은 화장실에 들러야 한다는 것 정도다.


'인생은 혼자니 혼자 잘 먹고 잘살아보자'라는 말은 아니다. 나 역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고 그런 시간을 좋아해서 글쓰기도 할 수 있지만 사람의 따뜻함이 그리울 때 더 많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붙잡고 이 오기를 기다린 적은 수도 없이 많고 생일이면 누가누가 연락해주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내기도 한다. 글을 쓰는 이유도 찬가지다. 살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그런 내 마음에 대해 진심 어린 공감을 받고 싶어서다. 그리고 그런 건 나뿐만이 아니다.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이 지금의 시대를 이끌어가는 이유도 소통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본능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나도 너도 사람 없이 살 수 없 우리는 서로 이야기하며 살아야 한다. 괜히 인간(人間)이 아니다.


인생이 힘든 이유는 거기서 생긴다. 자기 스스로도 믿 수 없는 불완전한 우리가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을 믿지 못하는 내가 남과 어우러져 살려고 하, 생이 힘든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에서도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태어환경도 다르고 살아가는 능력도 다르고, 생김새도, 피부색도, 심지어는 홍채라는 눈동자의 테두리도 달라 요새는 홍채 인식으로 개인의 정보를 암호화하기도 한.  여러 가지 다름을 비교하다 보면 누가 낫냐 아니냐는 우열이 생기고 그게 우리를 괴다.


'엄친아'란 엄마 친구의 아들의 약자로 '잘나서' 엄마를 부럽게 하는 엄마 지인의 자식들을 말한다. 그들은 대개 공부도 잘하고 결혼도 쉽게 해서 엄마를 부럽게 한다. 세상에는 뭔 놈의 엄친딸과 엄친아가 그렇게 많은지 30이 넘은 요새는 엄친 아아(엄마 친구 아들의 아들) 소식도 들린다. 들 얘기를 듣고 엄마는 '아들은 결혼은 언제 하고 아기는 언제 낳아~?'라고 묻는데 귀여운 엄마는 그런 것도 수줍게 말해서 히 내가 미안해진다. 밉게 말했으면 그런 소리는 왜 하냐고 짜증이라도 낼 텐데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보면 내가 엄마의 행복을 저당 잡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마음 급해진다. '나만의 삶의 속도가 있다고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게 부러운 엄마의 마음을 탓하기만 할 수는 없다. 결국은 눈엣 가시 같은 엄마 친구의 아들, 그들만 없었어도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 지지 않았을까_라는 푸념도 해본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알랭 드 보통은 그런 남들과의 다름이 불안을 가져온다고 했다.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사회적 사다리에서 우리가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지금보다 낮은 곳으로 떨어질까 두려워서라고 했. 그런 그의 주장에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친구의 취업 소식에 마냥 기뻐할 고시생과 동생의 결혼 소식을 두 손 모아 환영할 노총각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지어 재벌가 자식들도 서로 간의 자산을 비교한다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는 말도 있다. 결국 우리는 그게 누구라도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산다. 생이 힘든 건 외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서 그렇다. 혼자 사는 건 외로워서 힘들고, 같이 살자니 자꾸 내가 뒤떨어져 보고, 외로움과 불안은 평생 우리를 괴롭힌다 말이다.




사실 우리를 정말로 힘들게 하는 건 건물을 자랑하는 연예인 아니고 로또 1등 맞은 아무개도 아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내가 의지하는 사람들, 나와 가장 가까운 이웃들이다. 8촌이 땅을 사는 것보다 4촌이 땅을 살 때 배가 더 아픈 이유는 우리가 바로 옆의 사람들을 비교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친구 선후배 심지어는 형, 누나, 동생 등의 형제까지, 인생을 함께는 우리의 동료우리의 실질적인 라이벌이.


그건 도 마찬가지다. 친구의 취업 소식을 기뻐하면서도 그 회사의 월급이 우리 회사보다 높은 지 낮은 지를 검색해본 적이 있다. 전문직 자격증을 딴 친구에게 고생했다고, 축하한다고 하면서도 앞으로 친구가 받게 될 연봉이 얼마나 높은지 부러워하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이고 그들의 앞길을 응원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축하만 하기엔 자꾸 낡아 빠진 내 사다리가 눈에 밟 가만히만 있으면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 불안해했다.

<심규열, YouTube : 국내파 영어회화>

나를 글쓰기로 이끌어준 친구가 있다. 영어회화는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며 프리랜서 영어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말로만 작가가 꿈이라고 떠들어 대던 내게 실천은 왜 하지 않냐고 질책하는 친구였다. 처음에는 잔소리하는 친구가 미웠지만 친구 덕분에 결국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친구가 그랬다.


"나는 남과 비교하며 살아본 적이 없어, 단지 과거의 나보다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고 다행인 건 매년 성장하고 있어"


'청춘 만화 주인공인 줄 아나?' 싶었지만 그래도 멋있었다. 남보다 좋은 회사, 남보다 높은 연봉, 남보다 더 나은 생활을 바라는 게 보통인데 친구 삶의 기준이 자기에게 있었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내가 그 속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남보다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걸 즐기는 친구였다. 나를 응원할 수 있었던 것도 거기서 오는 마음의 여유 덕이 아니었을까 싶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로 더 많이 행복해졌다. 글은 내게 취미이자 목표가 되었다. 창작의 기쁨 괴로움 느끼기도 하고 잘 쓰고 싶다는 바람으로 하루하루가 충만하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쁜 건 삶의 기준을 내 안으로 끌어오고 있다는 실감이다. 나보다 돈을 잘 벌든 못 벌든, 더 좋은 곳에 살든 아니든, 점점 더 신경이 쓰이지 않고 있다. 다만 어제의 나보다 글을 더 잘 쓰고 있는지, 더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실감, 그 실감으로 행복하다.


내 장점은 꾸준함이고 펜을 잡은 이상 글쓰기를 통해 어떤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성취의 크기가 크길 바라지만 누군가 보다 컸으면 하는 바람은 아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길 바라고 그 과정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삶의 기준을 내쪽으로 가져오다 보면 친구들의 성공을 내 일처럼 기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땅을 사서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더 행복하면 좋겠다고 사촌의 기쁨을 함박미소로 응원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내 진심이 사람들에게 닿으면 그들도 나를 더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만 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여전히 믿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각자의 삶을 꾸려가며 발걸음을 함께 할 수 있다고는 믿는다. 각자의 여권은 자기가 챙겨야 되지만 혼자 하는 여행보다는 둘이 하는 여행이 낫지 않냐고, 그렇게 하하호호 의지하며 인생이라는 여행을 함께 하자고, 우리는 그럴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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