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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Nov 22. 2020

흔한 우울증은 없다

파란 하늘의 꿈

Life is rhythm, 삶은 리듬이다


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 식대로 표현하면 '항상 같을 수는 없다'라는 건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희로애락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행복한 순간에는 언제나 비극의 씨앗이 숨겨져 있고, 좌절만이 가득한 순간에도 어딘가는 구원의 빛줄기 한 줄기는 있기 마련이다. 기쁨과 슬픔은 행복과 불행의 높이차에 있지 않을까 싶다. 행복이 불행으로 바뀔 때, 좌절이 희망으로 바뀔 때, 우리의 감정은 요동친다. 리쌍이라는 가수는 '오르락내리락 반복해, 기쁨과 슬픔이 반복돼, 사랑과 이별이 반복돼, 내 삶은 돌고 도네' 라며 인생을 노래했다.


삶이 우울하다고 느꼈던 적은 두 번 정도다. 단지 일상에서 기분이 나쁘고 마음이 울적했던 적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일정 기간을 지속해서 불행하다고 느꼈던 적이 그렇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조금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도 하겠다. 인생이 계속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 자꾸 꼬이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도 이 글을 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에 비해서는 행복하게 살아온 게 맞다. 인생에서 대다수의 시간을 즐겁게 보냈고 주변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함께였다. 하지만 행복했던 만큼이나 떨어져야 할 곳은 깊었고 그래서인지 그때 느꼈던 감정은 시간이 지나서도 흉처럼 마음에 남아있다. 상처가 깊으면 아픔은 나아도 흉터는 남고 그게 비록 아쉬워도 그 전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다.




나의 두 번째 불행은 전역과 함께 찾아왔다. 뭐든 해낼 것 같은 자신감으로 전역했는데 반년도 되지 않아 우울증에 걸렸다. 검은 마음, 이랄까. 마음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었다. 잘살고자 쌓아왔던 수 없는 다짐들도, 소중하게 간직하던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도, 모두 마음에서 사라졌다. 속이 텅 빈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찾아간 병원에서는 10분 정도의 면담과 짧은 뇌파 검사를 하더니 우울증이 맞다고 진단해줬다. 진료는 마치 약 처방을 허가받는 인증 과정 같았다. 접수를 하고, 검사를 받고, 진료를 받고, 결과를 통보받았다. 일련의 과정은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웠다. 그렇게 병원에 들어가서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공식으로 인증받은) 인생의 첫 번째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세상에 5억 명의 사람이 있다면 5억 개의 우주가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모두가 하나의 우주고 고유한 세계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라도 완벽하게 타인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누군가를 완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는 말이다. 네가 아는 나와 내가 아는 나, 내가 아는 너와 네가 아는 너, 그 사이에서 우리는 고독을 느낀다. 좁히려야 좁힐 수 없는 틈. 그 간격 때문에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나를 우울증이라고 진단해준 선생님은 그다지 친절하지도, 딱히 불친절하지도 않았다. 의사로서 환자를 대했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게 기분이 나빴다거나, 선생님의 태도가 무성의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뭐랄까,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달까. 어쩌면 정신과 진료라는 걸 특별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무슨 얘기든 다 들어줄 것 같은 푸근한 의사와 초점 잃은 눈동자의 환자, 그런 걸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선생님과 현실의 환자인 나는 상상과는 달랐다. 정신과 진료는 내가 알던 이비인후과 진료나 내과 진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증상을 묻는 질문을 받았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했다. 의사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다른 병원에 갔을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근데 그 사실이 뭔가 나를 고독하게 했다. 마음은 바닥인 것 같은데 눈에 보이는 현실은 그대로였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 데 나는 왜 이렇게 울적할까,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를 마치고 버스정류장에 서있는데 차들은 쌩쌩이지 잘도 달렸다. 추운 겨울에 패딩 모자를 눌러쓴 나와 내 앞을 지나가는 여러 대의 자동차.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 결국 변한 건 하나, 내 마음, 그것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병원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다시 갈 필요는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바닥에 떨어져 보니 그곳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혼자서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런 강한 믿음이 그곳에 있었다. 어쩌면 병원에 찾아간 이유도 약을 처방받고 싶었다기보다는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이 우울감이 흔히들 말하는 우울증이 맞는지 궁금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요행인지 다행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괜찮아졌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대인기피를 겪기도 했고 대화할 때는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우울하게 했던 일, 그것과 관련된 주제가 대화에 나올 때는 비단 그게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심장이 쿵광쿵광 떨리곤 했다. 이를테면 식중독에 걸린 이후로는 어떤 음식을 봐도 구역질이 나는 것과 같다,라고 할까. 상한 우유를 먹고 배탈이 났지만 한 동안은 쌀이든 빵이든 음식만 봐도 구역질이 날 것 같은 느낌과 비슷했다. 우울감은 점차 사라졌지만 그런 증세들은 조금씩 남아 보다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했다.




지난 토요일에는 친구 녀석 한 명을 만났다. 그 친구는 못 본 사이에 우울증을 겪었다고 했다. 원래 눈물이 별로 없는데 TV를 보다가도 자꾸 오열을 했고 자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친구는 마음이 건강한 녀석이었다. 삶의 과제들을 헤쳐갈 용기와 역량도 있었고 사람들과 관계하는데도 능숙한 사람이었다. 늘 밝고, 늘 웃는, 그런 녀석이었다. 근데 1년 만에 나타나서 우울증으로 힘들었다고 하는 걸 보니 그걸 듣는 마음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도 우울증 경험이 있다고 했더니 친구는 조금 더 편하게 자기 얘기를 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자리에 나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며칠이 지나서도 자꾸 친구의 이야기가 마음을 맴돈다.


친구를 보며 다시 한번 깨달은 건 마음의 건강도 신체의 건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몸이 건강한 사람이라도 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아플 수밖에 없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건강하다고 해서 아프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게 몸이 아닌 마음이어도 마찬가지다. 아픔의 정도나 회복의 속도, 충격을 감내하는 역량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계 이상의 충격에는 누구든지 아플 수가 있다.

 

상처는 아물어도 흉은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아픈 건 사라지겠지만 예전과는 분명히 뭐라도 다르다는 말이다. 지난날의 상처로 내 마음에 남은 흉을 보며 다짐한 게 하나 있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져야 할 일은 더 많아질 텐데 그러기 위해선 위기의 순간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언제 또 아플지 모르고, 언제 또 마음에 사고가 날지는 모른다. 언제든 그럴 수 있음을 알고 그런 때를 버틸 수 있는 체력을 평소에 길러 놓아야 한다. 책을 읽든, 운동을 하든,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든, 방법은 여러 가지다. 행복의 순간에는 언제나 비극의 씨앗이 숨겨져 있다. 하지만 어두운 바닥에도 어딘가는 희망의 빛줄기가 한 줄기 비추고 있다. 오르락내리락 반복해, 기쁨과 슬픔이 반복돼, 사랑과 이별이 반복돼, 내 삶은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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