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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May 08. 2022

날아라 지하철

출근길 서울 지하철 1호선의 풍경은 이렇다. 보통 4분에 한 번씩 배차가 있다. 역으로 치면 두 정거장에서 세 정거장에 한 번이다. 배차가 많아 보여도 이용하는 사람은 더 많다. 역사에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열차가 오기 전부터 호차별로 대기하는 줄이 길다. 열차가 도착해 출입문이 열리면 발 디딜 곳이 없다. 입구에 붙어선 이들은 다리미에 다려진 듯 납작하다. 턱은 목젖까지 당기고 팔은 몸에 바짝 붙인 모양이다. 문이 열리면 내리는 승객들이 쏟아지고 그렇게 생긴 빈틈은 기다리던 승객들이 다시 운다.


열차 안의 풍경을 보면 우선 앉아 있는 승객들은 안락하다. 편하게 자리를 잡고 스마트 폰을 보거나 자는 사람도 있다. 가끔은 책을 읽기도 한다. 힘든 건 서서 가는 사람들인데 그들도 위치에 따라 구분된다. 하나는 의자 앞의 사람들이고 둘째는 출입문 앞의 사람들이다. 의자 앞에 있는 이들은 그나마 괜찮다. 사람들에게 치일 일도 없고 운이 좋으면 비는 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


문제는 출입문 앞의 사람들이다. 노약자석 옆에 있는 왼쪽과 오른쪽 출입문,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가는 내내 고생이다. 자세히 보면 그들의 자세는 대개 비슷하다. 팔꿈치를 갈비뼈에 붙이고 양쪽 팔은 가슴 앞 들고 있다. 나름의 방어자다. 그지 않으면 최소한의 자기 공간을 가질 수 없다. 나의 가슴과 앞사람의 등이 닿을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정면으로 마주 볼 수도 있다. 웅크린 방어자세를 취해야 그나마 사방에서 오는 압력을 견딜 수 있다.


역에 정차할 때도 고생이다. 역에 도착하면 내리는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다른 사람들을 밀친다. 출입문 앞의 사람들을 밀치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내리면 이제는 후반전이다. 타는 사람들에게 한번 더 치이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들어오는 사람들은 밀치지만 원래 있던 승객들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앞에서밀고 뒤에서버티는 상황이다. 그 사이에 끼이게 된다. 어정쩡한 자세가 되면 열차가 출발해도 발은 디딜 곳을 찾지 못한다.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한다.


매일을 반복하면 이런 일에도 요령이 생긴다. 첫째는 사람들이 서 있는 각도에 따라 빈틈이 있다는 것이다. 자갈을 통에 부어도 사이사이에 빈틈이 생기는 것과 같다. 그런 틈을 찾으면 그나마 편하다. 두 번째는 실제로 편한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출입문과 좌석 끝, 그 사이의 공간이다. 출입문에 들어서면 왼쪽이나 오른쪽에 좌석이 있고 그 사이에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정도의 자리가 있다. 그곳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큰 흐름에 살짝 빗겨 있어 비교적 압박을 덜 받는다. 거기에 서면 조금 더 편하게  수 있다. 마지막은 열차를 탈 때의 요령이다. 출입문이 열리면 승차하려는 사람들은 타고 있던 승객들을 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밀리지 않지만 어느 순간 틈이 생기는데 그 찰나를 이용해야 한다. 그때 폴짝 올라가면 비교적 힘을 들이지 않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으면 이런 요령들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적당히 많을 때는 한번 해볼 만하다.


나는 1호선으로 7개의 정거장을 이동한다. 시간으로 치면 15분이다. 잠 편하자고 이러는 게 우습기도 하다. 이런 꼼지락 거림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못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잠깐의 불편함도 싫 게 사람이고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면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간적인 행동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본질이 고통이라고 했다. 원래 인생은 고통이라고, 행복이란 고통을 잠시 잊는 순간에 불과하다고 했다. 출근길 지하철은 쇼펜하우어가 바라보는 인생의 모습과 비슷하다. 고통으로 가득 찬 열차 조금이라도 편하고 싶은 나, (조금 과장하자면) 나의 꼼지락 거림은 행복하기 위한 인간적인 몸부림이고 살고자 하는 본능적인 투쟁이다.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으면 괜스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40년을 직장 생활한 엄마의 출근길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녀의 노고에 감사하기도 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때로는 함께하는 승객들에게 동료애를 느끼기도 한다. 서로가 모두 힘들지만 고생이 많다고, 이렇게 오늘도 우리는 출근을 한다고 말이다. 세상의 많은 직장인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출퇴근을 해낸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말이다.


다짐하는 게 있다. 이런 매일의 시간을 모아 더 나은 인생을 위한 동기부여, 그런 의지의 자양분으로 만들고 싶. '독기'라고 불러도 좋다. 지하철 출퇴근이 '생계'의 상징이라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생계에 대한 자유'를 가지고 조금 더 하고 싶은 일, 출퇴근이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어제의 지하철을 기억하고, 오늘의 출근길을 느낀다.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출근길 15분의 고행은 내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소중한 단련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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