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멍 때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글

by 추세경

첫 경험이었다, 31년 만에 첫 경험.


20년 1월 아침, 서른을 적응하고 어느새 서른 하나가 되었다. 정말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회사도 적응을 했고 혼자 산지도 1년이 넘었다. 매일 아침이면 각 잡힌 서류 가방을 들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출근한다. 빨래와 설거지, 청소도 척척, 이주에 한 번은 싱크대 하수구까지 말끔히 닦는다.


그 날은 특별했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화장실에 들어가 머리를 감았다. 방귀 한번 뿡 끼고 나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팬티를 입었다. 로션을 바른 채 베란다 블라인더를 올렸고 건조대 위의 팬티를 집어 팬티를 입고, 팬티를 입고... 팬티를... 또 입고...?


팬티에 다리가 들어갔을 때 밑은 이미 따뜻했다. 발에서 출발한 2번 팬티는 무릎을 넘지 못하고 유턴했다. 당황스러워서 콧방귀가 나왔다. 어이없는 행동을 여러 개 해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정말.

뉴스 속보입니다. 오전 6시 40분 서울시 구로구 아파트에서 31세 남성이 팬티를 두 장 입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목격자에 따르면 남성은 두 번째 팬티를 끝까지 올리지 못했고......

이런 사건은 맥락도 의미도 없어 어디 말할 데도 없다. 기승전결이라도 있으면 웃기는 얘기 하나 해주겠다고 소주 한잔에 털어라도 볼 텐데 이건 뭐 답이 없다.


나에겐 콧방귀 뀔일이 자주 생긴다. 지하철이랑 버스를 반대로 탄 적은 수십 번이고 801호에 사는 내가 901호에 가서 비밀번호를 눌러댄 적도 있다(901호님 죄송합니다). 빨래 바구니에 넣으려던 양말을 재활용 주머니에 던지는가 하면 치킨 소스를 뿌려놓은 종지에 콜라를 따른 적도 있다.


옛날 TV가 지직거렸던 것처럼 내 일상도 종종 이렇게 지직거린다. 어쩌면 이런 일상이 내겐 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나는 팬티를 2개째 집었던 내 적응이 안돼, 그 순간이 자꾸 머리에 맴돈다.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멍 때리는 걸 좋아하고(잘하고) 두 번째는 멀티태스킹을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순간에 한 가지밖에 못하는 내가 수시로 멍을 때리니까 자꾸 몸이 방향을 잃는다. 손은 팬티를 집고 있는데 머리는 팬티를 입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고 콜라는 따라야겠는데 손이 종지로 향하는지 컵으로 향하는지 머리는 관심이 없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하고 살았는데 회사원이 되고 나서는 멍 때리기를 정말 고쳐야겠다 싶기도 했다. 직장에서는 빠릿해야 하고 중간에 끼어드는 일도 슉슉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회사 얘기를 할 때 늘 하는 말이 있다. 회사 분위기는 팀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팀 바이 팀, 사람 바이 사람이라고 한다. 어떤 팀에 속해 있느냐와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가 회사 생활의 질을 결정한다는 얘기다.


반면에 팀이나 사람과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있다. 퇴근하면 몸에 진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입사한 후는 퇴근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게 제일 행복하다는 말이다.


입사 초기에는 무기력한 자신이 의문이라고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자기 계발이든 놀이든 취미든 뭐라도 하고 싶은데 왜 퇴근만 하면 기운이 없는지 이해 못했다. 밤만 되면 에너지가 넘쳐 공부도 술자리도 열심히 하던 우린데 왜 이제는 7시만 되면 진이 빠지는 의아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고 이 년, 삼 년이 지난 지금은 의문 자체가 지겨워졌다. 퇴근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었고 이제는 쉬는 게 중요하다며 서로를 위로한다(물론 휴식은 정말 정말 중요하다).

우리는 왜 퇴근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까? 일이 많은 사람, 상사를 잘못 만난 사람, 동료가 이상한 사람, 일이 너무 안 풀리는 사람 등, 저마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하나 같이 넉다운되는 이유는 저마다의 사연 말고도 공통된 원인이 있지 않을까. 회사원이라는 정체성, 달리 말해 회사라는 조직, 그 시스템 안의 사람들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 이유를 '나답지 못함'에서 찾는다. 나를 예로 들면, 나는 회사에서 멍을 때려서도 안되고, 못하는 멀티 태스킹도 잘하는 척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시작하기까지 시동 거는 속도가 느린 사람인데 회사가 그런 걸 봐줄 리 없다. 나는 슈퍼 멀티 태스커가 되어 끼어드는 일들을 바로바로 쳐내야 한다. 러지 않으면 더 큰 스트레스로 돌아올게 뻔하 때문이다. 그렇게 나랑 맞지 않는 모습으로 종일을 긴장한 채 보내다 보면 체력은 고갈되고 몸은 방전된다.


회사에서 내가 '멍 때림'과 '멀티태스킹 못함'을 숨기듯이 사람마다 감추려고 노력하는 '나다움'이 있을 것이다. 남이 시키는 일은 죽어도 못하는 사람도 팀장님이 부르면 '옙' 하고 달려갈 수밖에 없다. 평생을 새벽 4시에 자서 12시에 일어나던 사람도 아침 알람에 눈을 떠야 한다. 노력하는 만큼 성취를 이뤄내던 사람도 투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곳이 회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탁이라고는 할 줄 모르던 사람도 매일 누군가에게 협조를 구해야 하고 덤으로 부탁을 거절하는 단호함까지 익혀야 한다.


회사는 정해진 위치에 직원을 배치하고 모두 그 자리에 맞춰지길 바란다. 우리는 달처럼 빛나고 별처럼 반짝이고 싶은데 회사는 우리에게 볼트와 너트가 되라고 한다. 지만 리는 복잡한 존재서 회사가 바라는 로만 살기는 쉽지 않고 그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니 퇴근 하면 기운이 쪽 빠질 수밖에.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이고 워라밸이 좋다는 말은 나에게는 멍 때릴 수 없는 삶과 멍 때릴 수 있는 삶의 균형이 적절하다는 뜻이다. 윗 세대 어른들은 회사의 발전이 나라의 발전이고 나라의 발전이 곧 나와 가족, 우리네 삶의 발전이라는 마음으로 일해오셨다. 하지만 감사하면서도 죄송하게도 90년생인 나는 그런 시대를 지난 사람이라 회사원이라는 정체성만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다.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다. 때문에 나에겐 '멍 때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이 있어야 나는 회사 생활을 더 잘할 수 있다.


이제 회사 생활 3년 차에 접어든 나는 (내 입으로 부끄럽지만) 회사 생활과 일상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퇴근 후의 삶을 나다울 수 있는 활동으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퇴근길에는 멍 때리며 머리를 비우고 집에 오면 글을 쓴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축구를 한다. 축구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그때 발산하는 에너지가 '나다움'으로 돌아다고 실감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못하고 있지만 연애도 하고 싶다. '나 다움'을 좋아해 주는 사람의 '너 다움'을 사랑하는 일기 때문이다.


멍 때리기, 글쓰기, 축구, 연애는 그 자체로도 즐거움이지만 나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의무(나에게는)이기도 하다. 그렇게 일하지 않는 시간을 나답게 보낼 때 나는 더 에너지 넘치는 노동자가 될 수 있고 회사 시스템에 마모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팬티를 두 번 입을 뻔하다가 콧방귀를 뀌는 나도 나고, 서류 가방을 들고 멀끔하게 출근하는 나도 나다. 일상에서의 나와 직장인으로서의 나를 내 안에 공존시 때 나는 더 활기게 생활 수 있다. 각자가 가진 '나다움'은 사람 수만큼 다양하겠지만 그런 스스로를 예뻐해 줄 때 회사 생활을 의연하게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팬티를 두 개 입으려던 나를 생각하면 여전히 당황스럽다. 하지만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회사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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